Y Combinator의 공동설립자 폴 그레이엄이 스타트업 창업자, YC에서 만난 사용자들로부터 얻은 통찰과 YC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2022년 9월
최근 나는 Y Combinator 지원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짧은 말로 최고의 합격 팁을 주자면,
'당신이 사용자에게서 배운 점을 설명하라.'
이 한마디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사용자를 얼마나 주의 깊게 보는지,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그들이 당신이 만드는 것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까지 검증한다.
이후 나 자신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YC가 투자한 스타트업들, 즉 우리의 사용자에게서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는 점이다. 정확히 똑같은 문제는 아니지만, 무엇을 만들든 놀랄 만큼 문제가 반복된다. 서로 다른 100개의 스타트업을 조언해 주다보면, 더 이상 새로운 문제를 만나는 일은 드물다.
이 점이 바로 YC가 작동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내게는 내 회사와 친구들의 회사처럼 몇 개의 데이터 포인트밖에 없었다. 다양한 형태로 동일한 문제가 얼마나 자주 재현되는지는 놀라웠다. 후기 투자자들은 경력 내내 100개의 스타트업을 조언해볼 일이 거의 없어 이를 모를 수도 있다. 그렇기에 YC 파트너는 1~2년 만에 엄청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초기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것은 데이터가 많아져서 유리하다. 회사 수가 많기 때문만이 아니라, 많은 일이 잘못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문제를 알아도, 조언은 자동화하거나 공식화할 수 없다. YC 파트너와 1:1로 오피스아워를 갖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각 스타트업은 독특하며, 이를 잘 아는 파트너가 개별적으로 조언해야 한다.
[1] 우리는 2012년 여름 일명 "YC를 망가뜨린 배치"에서 '개별화'라는 교훈을 얻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파트너를 하나의 풀(pool)로 관리했다. 스타트업이 오피스아워를 신청하면, 가장 먼저 빈 자리를 올린 파트너와 연결됐다. 이는 파트너 모두가 모든 회사를 알아야 함을 의미했다. 60곳까지는 괜찮았으나, 80곳을 넘어가자 시스템이 붕괴됐다. 창업자들은 몰랐겠지만 파트너들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배치 중간이 지나도록 아직 많은 회사를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2] 처음엔 이해가 안 됐다. 60개일 땐 괜찮았는데, 겨우 3분의 1 늘어난 80개에서 왜 문제가 터진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는 O(n²) 알고리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터질 수밖에.
해결책은 고전적이다. 배치를 파트너별로 담당하는 작은 그룹으로 쪼갰다.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고, 이후에도 잘 작동하고 있다. 이는 스타트업 조언의 과정이 얼마나 개별화가 필요한지를 강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와 관련된 또 다른 놀람은 창업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로 상담하러 왔다가, 대화 도중 훨씬 더 큰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이 사례는 흔하다), 투자 유치가 어렵다고 찾아오는데, 자세히 파고들면 실은 회사 실적이 저조해서 투자자들이 눈치를 챈 게 원인이다. 또는 사용자 확보가 잘 안된다고 고민하다가, 실은 제품 자체가 충분히 좋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때론 “직접 만든 게 아니더라도 이 제품을 쓰겠습니까?”라고 물으면, 창업자가 잠깐 생각한 뒤 “아니요”라고 답한다. 바로 그것이 사용자를 못 얻는 이유다.
종종 창업자들은 문제가 뭔지 알지만, 중요도 순서를 잘 모른다. [3] 세 가지 고민을 들고 오는데, 하나는 보통, 하나는 아예 중요하지 않고, 하나는 당장 해결 안 하면 회사가 망할 심각한 문제다. 공포 영화에서 주인공이 남자친구의 외도는 깊게 고민하면서, 미묘하게 열린 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남자친구는 잊고, 저 문이나 신경 써!"라고 말해주고 싶다. YC의 오피스아워에선 진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스타트업이 여전히 망하는 일은 있지만, 적어도 무심결에 살인마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일은 드물다. YC 파트너들이 미리 경고해주니까.
그렇다고 해서 창업자들이 말을 잘 듣는 건 아니다. 이것도 큰 놀람이었다. 얼마 전, 두어 번 배치를 경험한 파트너가 "1년 후에야 창업자들이 돌아와 '그때 말 좀 들을 걸 그랬어요'라고 한다"고 하더라.
나도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왜 말을 안 들을까? 단순히 고집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더 큰 원인은 스타트업에는 직관에 반하는 부분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직관에 반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듣는 사람 입장에선 틀렸다고 느끼기 쉽다. 즉 말을 안 듣는 건 믿지 않아서다. 경험으로 깨달은 뒤에야 믿게 된다.
[4] 스타트업이 이토록 직관에 반하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오며 겪어온 다른 경험과 너무 달라서다. 직접 해본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YC 파트너도 되도록 창업자 경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직관 역행성'도 YC가 작동하는 이유다. 직관적이었다면, 창업자들은 애초에 우리 조언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스타트업 초기에는 집중이 두 배로 중요하다. 문제는 수백 가지인데, 해결해줄 사람은 창업자뿐이기 때문이다. 중요치 않은 것에 정신 팔려 있다면, 정작 중요한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YC에서 하는 핵심 일은, 어떤 문제가 가장 중요한지 파악하고, 이를 (이상적으론 1주일 이내에) 해결할 아이디어를 낸 뒤 시도해보고 그 효과를 측정하는 것이다. 단기적이고 측정 가능한 결과에 집중한다.
이렇다고 해서 창업자가 무작정 성급히 행동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작은 단위로 자주 방향을 점검하면, 마이크로 단위로는 단호하되, 매크로 단위로는 신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경로가 조금은 꼬불꼬불해도 매우 빠르게 움직인다. 런닝백이 필드를 질주하듯이 말이다. 실제론 예상만큼 뒷걸음질이 많지도 않다. 창업자는 보통 어느 방향으로 달려야 하는지 감을 잘 잡아낸다. 특히 YC 파트너같이 경험 많은 사람이 옆에서 가설을 검증해주면 더욱 그렇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금방 알아채는데, 바로 다음 오피스아워에 그 결과를 얘기하게 되므로 정말 빨리 눈치챈다.
[5] 항해 능력이 조금만 개선돼도 스타트업은 훨씬 빨라진다. 경로가 짧아지고, 이 길이 맞다는 확신이 있을수록 더 빨리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YC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창업자가 약간 더 집중력을 얻게 도와주어서 속도를 낼 수 있게 한다. 속도야말로 스타트업의 본질이므로, YC는 스타트업을 더 스타트업답게 만들어준다.
속도가 스타트업을 정의한다. 집중은 속도를 만든다. YC는 집중을 강화해준다.
왜 창업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헷갈릴까? 스타트업은 정의상 새로운 일을 하므로, 그 방법도, 심지어 '그것'이 뭔지도 아무도 모르는 데다, 스타트업은 대체로 너무나 직관에 반하므로 그렇다. 또한 많은 창업자, 특히 젊고 야심찬 이들이 잘못된 '승리법'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해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교육 시스템은 시험 자체를 해킹하는 법(참고)을 가르친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선 그런 게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YC는 창업자들이 시험 해킹을 멈추도록 재교육한다. (꽤 오래 걸린다. 1년쯤 지나도 예전 습관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본다.)
YC는 단순한 선배 창업자의 지식 전수를 넘어선다. 견습공이 아닌, 일종의 전문화(specialization)에 가깝다. YC 파트너의 백과사전 같은 스타트업 문제 지식과, 창업자가 가진 도메인 깊이 지식은 전혀 다른 모양새다. 창업자가 YC 파트너만큼 스타트업 문제를 외울 필요도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경험 많은 창업자도 YC에서 배울 것이 있고, 뛰어난 운동선수에게도 여전히 코치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YC가 창업자에게 주는 또 다른 큰 가치는 동료 동기다. 이는 파트너의 조언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역사를 봐도 위대한 성취는 특정 장소와 기관에 모여 있다. 15세기 말 피렌체, 19세기 말 괴팅겐 대학, 로스가 이끌던 뉴요커, 벨 연구소, 제록스 PARC 등. 아무리 뛰어나도 좋은 동료가 있으면 더 나아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야심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일상에서 동료를 구하기 어려우니 누가보다 더 필요하다.
YC가 언젠가 위 유명 집단들과 견줄 만한 곳이 되지 못한다면, 노력 부족 탓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런 집단의 중요성을 잘 알고 애초부터 그런 곳을 만들고자 YC를 설계했다. 지금쯤이면 YC가 훌륭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최대 집적지임을 자랑스럽게 말해도 된다. 심지어 YC를 비판하려는 사람조차 이 점은 인정한다.
창업자들과 동료 집단을 결합하면 강력한 효과가 나타난다. 예전에는 이 둘이 함께할 수 없다고 여겼다. 독립의 대가가 외로움이라 여긴 것이다. 1990년대 보스턴에서 우리가 창업할 때도 그랬다. 조언해줄 수 있는 나이든 몇몇 (질 차이는 있지만) 인물은 있었으나, 또래는 한 명도 없었다. 투자자 흉을 서로 털거나, 기술의 미래를 꿈꿔볼 동료도 없었다. 나는 창업자에게 자신이 진짜로 바라는 것을 만들라고 자주 말한다. YC 역시 우리 스스로 필요해서 고안한 거다. 스타트업을 시작할 때 우리가 딱 원하던 것처럼.
초기엔 무작위 부자들을 찾아다니지 않고도 시드 투자를 받을 수 있길 바랐다. 적어도 미국에선 지금은 흔한 일이 됐다. 하지만 훌륭한 동료는 결코 흔해질 수 없다. 한곳에 몰리는 존재이기에 어디에나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는 무언가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 YC 디너의 에너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리는 처음엔 단 두 세 팀만 있어도 감지덕지할 줄 알았다. 방 안 가득 스타트업이 모이면 차원이 완전히 달라진다.
YC 창업자들은 서로에게 영감을 받을 뿐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도 준다. 이 점이 내가 스타트업 창업자에게서 배운 가장 기쁜 내용이다. 얼마나 서로를 관대하게 돕는지. 우리는 첫 배치 때부터 그걸 알고, YC 구조에 아예 녹여넣었다. 그 결과는 대학 등과 비교해도 훨씬 강렬한 집단이 되었다. 파트너, 동문, 동기 모두가 창업자 주변에 있고,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주석
그래서 나는 YC를 "부트캠프"라고 부르는 게 싫다. 강도는 부트캠프와 비슷하지만, 구조는 정반대다. 누가 똑같은 걸 하는 게 아니라, 각자 자신에게 맞는 작업을 YC 파트너와 함께 찾는다.
2012년 여름 배치가 망가졌다는 말은, 파트너들이 문제를 체감했다는 뜻이다. 아직 스타트업에까지 문제 영향이 있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배치는 성공했다.
이 상황은 사람들이 정답 판단보다는, 답 자체를 내는 일에 훨씬 능숙하다는 연구 결과가 떠오른다. 두 현상은 매우 비슷하게 느껴진다.
에어비앤비 창업자들은 특히 말을 잘 들었다. 유연함과 규율 덕도 있지만, 전 해에 워낙 고생을 많이 했던 것도 한몫했다. 그들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결정의 단위 최적값은 결과를 얻는 데 걸리는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투자자와 협상하면 며칠, 하드웨어라면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
고마운 분들: Trevor Blackwell, Jessica Livingston, Harj Taggar, Garry Tan이 초고를 읽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