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간에 면역항암제를 투여하면 생존 기간이 거의 2배 가까이 늘어난다는 임상 연구 결과와 그 이론적 근거, 의문점을 심층적으로 다루는 글.
2024-08-06 업데이트: 항고혈압제를 밤에 복용하면 좋다고 여겨졌던 것처럼, 이번 면역치료제 연구도 근거가 부족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연구 기간 중 임상 디자인이 여러 번 바뀐 점도 지적되어, 글 말미에 추가 설명을 적었습니다.
면역치료 분야에서 면역치료제 주사 시간이 얼마 전부터 매우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저는 종양내과 전문의가 아니지만, 최근 ASCO25에서 발표된 연구를 다룬 트위터 스레드에서 이를 처음 접했습니다.
연구 내용은 이렇습니다. 오후 3시 이전에 면역치료제를 맞은 환자들은 암이 더 오래 조절(11.3개월 vs 5.7개월)되고, 생존 기간도 더 길다(중앙값 기준 23.2개월 vs 16.4개월)는 것입니다. 무려 두 배 가까운 차이입니다. 그저 주사 시간을 아침으로 옮긴 것만으로 비용이나 위험 부담 없이 설문지의 가장 중요한 숫자들(생존률 등)이 확 달라집니다.
혈액 내 T세포 변화량도 시간대마다 실제로 매우 다르다는 데이터도 같이 공개되었습니다.
현재 면역치료 표준 가이드라인에는 '아침에 투여'가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환자는 본인 일정이나 병원 스케줄에 맞춰 편한 시간에 주사를 맞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가 사실이라면 가이드라인 자체를 고쳐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보통 공부 좀 한 과학자라면 이런 결과가 너무 황당하게 보여서 당연히 의심부터 듭니다.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실상 시간대 효과 논란은 타 임상 영역(예: 혈압 약 복용 시간)에서도 있었습니다. 흔히 건강한 환자는 아침에 혈액검사, 위급한 중환자는 새벽 2시에 비상 채혈, 이런 식의 '시간대 혼선'이 임상 연구 데이터를 교란시키곤 합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후향적 전자의무기록 분석이 아니라,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랜덤화 임상시험, RCT)**입니다. 즉, 환자가 아침에 잘 오는 것과 건강함 사이의 상관성을 무작위 배정이라는 방법으로 제거했습니다. 물론 야간 간호사 피로도와 같은 변수는 완전히 통제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극적인 생존율 차이가 나올 리는 없습니다.
일단 이번 연구 결과는 학회 발표(초록 발표)라 세부 데이터가 부족하지만, 기존의 많은 논문/후향적 연구에서도 '아침 일찍 면역치료'가 일관되게 더 좋은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이를 '면역연대치료(chronotherapy, immunochronotherapy)'라고 부릅니다.
이 모든 연구가 모여 최근에 정말 깊이 있는 리뷰 논문 으로 정리되었습니다. 3,250명을 대상으로 한 18편의 후향적 분석 연구에서, 암종에 관계없이 아침 투여가 일관되게 더 좋은 결과를 보여줍니다.
결론(TLDR): 아침 일찍 면역치료를 하면 생존 기간이 확실하게 길어진다.
특히 펨브롤리주맙(keytruda), 니볼루맙(Opdivo), 이필리무맙(Yervoy) 등은 수 주일 이상 오래 체내에 머무는 약물이지만(반감기 수십일), 이 약들에도 시간대 효과가 나타났기에 더욱 놀랍습니다. 물론 이들 연구 대부분은 후향적 분석이라 혼란변수가 있을 수 있지만, 앞서 제시된 RCT 결과와 합치된다는 점에서 '진짜 효과'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인간과 동물은 '서카디안 리듬(생체리듬)' 위에 존재한다. BMAL1, CLOCK, PER, CRY 등 약 15개의 '시계 유전자'는 하루 24시간 주기로 발현량이 진동합니다. 이 유전자들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며, 세포가 지금이 '하루 중 어느 시점'인지를 인식하게 해줍니다.
면역계 또한 이 리듬의 영향을 강하게 받도록 진화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포식자의 위험이 덜한 밤에는 안전하게 휴식하다가, 아침이 되면 세균이나 신선하지 않은 음식을 먹거나 외부 자극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진화적으로 아침(활동 시작 시점)에 면역계를 '최고로 준비'시키는 편이 유리했을 것입니다.
마우스 실험에 따르면, 림프구(T, B세포)는 아침에 림프절 내에 축적되어 항원을 기다립니다. (논문 링크) 해당 과정은 '시계 유전자'를 없애면 사라집니다. 즉, 림프계와 혈액 내 림프구 순환이 '시간'에 따라 정교하게 조절됩니다.
이외에도
면역치료제(항암 면역항체)의 역할은 면역계를 '억제하지 못하게' 하는 것뿐입니다. 즉, 그 순간 면역계 컨디션이 모든 걸 좌우합니다.
결국, 진화적으로 아침에 면역계가 전투준비가 가장 잘 되어 있기에, 이 때 치료제를 투여하면 최댓값 효과가 발휘될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해집니다.
당연히, 바로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펨브롤리주맙 반감기가 27일이나 되는데, 굳이 아침에 한 번 넣는다고 그렇게 큰 차이가 날까?" 실제로 저자를 비롯한 누구도 이 부분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몇가지 가설만 있을 뿐이죠.
"계절이나 시점이 다른 시간에 면역계를 자극하면, 이후 반복 자극에서도 초기 반응의 '퀄리티'가 복구되지 않는다."
즉, T세포의 '각인'이 가장 핵심일 수 있다. 다만 실제로는 그 외에도 많은 미세한 이점들(아침 시간대의 림프구 이동, DC 기능, 림프계 투과성 등)이 더해져서 폭발적 효과가 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백신에서도 아침 접종이 더 강한 면역반응을 유도한다는 결과 나왔지만, 이는 백신 항원이 단회성, 단기성 신호라서 그렇습니다. 면역항암제처럼 지속 투여 약제에서는 그 외 다른 기전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연구에서 논란이 된 건, 과거 혈압약 ‘밤 복용’ 신봉 열풍처럼, 실제 무작위 임상에서 부정되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HYGIA 연구 등은 매우 설득력있게 밤 복용이 효과적이라 했지만, 후속 대규모 임상연구에서는 반박되었습니다.
따라서, 면역치료제 시간대 효과도 신중히 검증해야겠죠. 아직 공식 논문 발표 전인 임상시험에 의존하는 상황이고, 임상 디자인도 여러 번 수정되어(일부 환자 배치, 조기 종료, 관찰군 변경 등) 결과 신뢰성에 의문이 남습니다.
그러나 면역계와 서카디언 리듬의 강력한 결합, 하루 중 밤과 낮에 림프구 농도가 극적으로 변동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번 '아침 효과'가 단순 착시현상만은 아닐 가능성에도 무게를 둘 만합니다.
다음 단계는? 이 대규모 임상시험 외에도, 흑색종 등에서 시간대별 무작위 임상시험들이 곧 시작될 예정입니다. 과학이 해답을 줄 때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주: '최소 23.2개월'이라는 생존 중앙값은, 연구 기간이 23.2개월간 진행됐다는 점에 따른 결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