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모스크바에서 몬트리올까지 이어진 지옥 제국의 암울한 통치, 그 속에서 펼쳐지는 죄, 정의, 인간 본성과 신의 판결에 대한 성찰.
1985년, 지옥 제국은 모스크바에서 몬트리올까지 북반구의 광대한 부분을 검붉게 뒤덮고 있었다.
실버쏜 전투에서의 패배 이후, 각진 핵무기의 위협 아래 임시 휴전이 성립되었다. 멀티스탄, 키릴 연합,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조화로운 비옥룡 제국은 서로 국경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세웠다. 때로는 서로 합의한 조약의 결과였고, 때로는 사실상의 실력 행사의 선이 되기도 했다. 기적적으로, 그 국경은 굳건했다. 악마들은 힘을 축적하며 기다렸고, 혜성왕도, 세계의 모든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학살이나 고문 같은 끔찍한 만행이 벌어졌다면, 사람들은 지옥의 사악함을 분명하고 생생하게 인식하고 맞설 명분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강이 피로 물드리리라 기대한 사람들은 실망했다.
학살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지, 영혼을 타락시키는 효율적인 수단은 아니다. 절박함은 인간의 최선을 끌어낸다. 굶주림에 시달려 죽어가는 가운데 마지막 빵 한 조각을 남에게 양보한다. 고문받으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모든 고통을 감수한다. 죽는 순간, 입술로 기도를 올린다.
인간에게 위기가 닥치면 최선이 지극한 영광으로 피어난다. 오히려 일상의 고단함이 인간의 작은 증오와 사소한 악의를 키워낸다. 누군가 아내를 총으로 쏜다면 남자는 기꺼이 몸을 던져 아내를 구할 것이다. 그러나 단칸방에 함께 살게 하면 한 달 안에 가정폭력범이 된다.
타미엘은 누구보다도 이를 잘 알았기에, 새 피지배자들에게 지나치게 극단적인 고통을 가하지 않았다. 다만 매해 1~2%씩 서서히 진행되는 체계적 경제 붕괴만 관리했다. 목을 조르되 완전히 조여 죽이지는 않았다. 그마저도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국가에서 지원하는 술집이 곳곳에 들어섰다. 모든 종류의 주류가 저렴하게 팔리고, 코카인, 마약, 각종 오피오이드까지 슬픔을 완전히 무디게 할 정도였다. 누구도 강요당하지 않았다. 악마에게 강요받는 것엔 오히려 위엄이 있으니. 하지만 네온사인이 번쩍이며 유혹했고, 월급이 깎이거나 실직자가 늘어날수록 중독의 유혹 역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거대한 제국의 마약 보조금도, 중독자의 갈망 앞에서는 보잘것없었다. 사람들은 금세 돈이 떨어졌다. 그러면 지옥 제국은 집에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친절하게 제시했다. 정부를 비판하는 이를 고발하면 일주일치 생활비를 받을 수 있었다. 고발 대상이 실제로 비판을 했는지 확인 따위는 없었으니, 눈먼 돈이나 다름없었다. 아내를 위해 총알을 막았을 법한 남편이, 한 푼 더 벌겠다고 갖은 죄명으로 아내를 지옥 비밀경찰에 고발했다.
도시 중심부마다 거대한 공장이 생겼지만, 생산하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이 공장들은 엄청난 양의 납을 대기와 토양으로 뿜어냈다. 혈중 납 농도가 높을수록 인간은 충동적이고 범죄에 쉽게 빠진다 — 신경독성 때문이다. 한편, 캐나다의 총기 규제는 미국의 너그러운 정책을 받아들여 사라졌다. 불과 몇 년 전엔 목청만 올렸던 다툼이 주먹다짐, 칼부림, 마침내 더욱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납중독(총기 범죄)으로 변했다.
『타미엘, 악마의 군주가 범죄에 관대했다』라고는 결코 할 수 없다. 새 꼭두각시 정부는 새로운 경찰 조직을 만들고, 잔혹함에 연연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체포된 이들이 흘러들어간 새로운 교도소들은 교도관이 죄수보다 더 많은 것처럼 보였다. 마치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을 교도관 역할에 몰아넣어, 그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정부의 목표인 듯했다.
"말이 안 돼!" 팔로 알토 카페테리아에서 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으며 아나가 말했다. "만약 악마가 없었다면 캐나다인의 5%만이 극악한 죄를 저지르고 지옥에 갔을 거야. 그런데 악마들이 죄를 조장한 덕분에 50%까지 늘었다면, 천만 명 넘게 영원히 고통받겠지. 그들이 선하거나 악한 건 원래 소질 덕분도 아니고, 악마가 캐나다를 차지했는지, 그래도 선함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다스렸는지에 따라 달려 있다면, 이게 어떻게 정당해?"
"우리가 이미 합의했듯 세상은 거의 늘 정당하지 않잖아," 내가 말했다.
"맞아, 세상엔 원래 부조리가 많은데, 이건 우주적 정의야. 누가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는가. 만약 뭐라도 정당해야 한다면 이 문제야만 하는 것 아니야? 그런데 알고 보니 단지 운이 안 좋아 잘못된 땅에 태어난 탓에 영원히 벌받는 거잖아!"
"결국 죄를 지은 건 본인의 선택이었지, 타미엘이 어떤 인센티브를 내걸었든 말이야."
"하지만 인센티브 없었으면 죄를 안 지었을 테고, 지금은 인센티브가 있어서 죄를 지었으면, 그 사람의 운명이 인센티브의 유무에 달린 거잖아! 이게 뭔 말이 돼!"
"아마 신의 율법에 이런 조항이 있을 수도 있지. 만약 악마가 행동경제학 전문가처럼 꼬드겨 죄를 지었을 때는, 그 죄는 빠진다, 이런 식으로."
"악마뿐만이 아니야! 맞아, 악마들은 일부러 납 공장을 만들어 근처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들어. 하지만 우리도 납 제품이 필요해서 납 공장을 세웠고, 범죄는 우발적으로 늘어난 거야. 선하거나 악한 사람의 경계도, 납 등 외적 요인과 사회가 심어준 가치에 따라 달라지고, 굳이 악인이 되랴는 유혹이 있어야 악인도 되는 거잖아. 예를 들어, 부자는 가난한 사람보다 도둑질을 덜 하는데 그건 도둑질 유혹을 받지 않아서일 뿐이잖아!"
"그럼 신이 상대평가로 평가하는 거겠네. 기준 사람을 정해, 여러 조건들을 같게 맞추고, '이 사람이 기준 인물과 똑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얼마나 죄를 지었을까?' 이렇게 따지는 거지."
"하지만 신이 실제 내 삶을 다 버리고,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내가 얼마나 선했을지 시뮬레이션으로 판단한다면, 사는 의미가 뭔데?"
"이미 자유의지가 얼마나 헷갈리는지 알고 있었잖아. 어쩌면 칼빈주의자가 다 맞았지도."
"그럴 리가...!"
"왜?"
"정의롭지 못하잖아."
"루바이야트의 사행시가 바로 그런 뜻 아니야. 케발리즘적으로도 다 연결된다더라고."
오, 타인의 지옥 속 눈물로 타오르는 그대여
언젠가 그 불길이 너에게도 닥치리니
신께 자비를 가르치려 기대하지 마라 그대가 가르칠 입장인가, 그분이 배울 처지인가?
"신이 자비롭지 않다기보다, 신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걸 탓하는 거잖아."
"아, 그래도 훨씬 낫다, 그 말."
처음에는, 모든 정의로운 나라의 국경이 지옥의 느린 붕괴를 피해 탈출하던 피난민들에게 열려 있었다. 몰락과 타락, 그리고 필연적인 영원한 저주에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_미쯔바_가 어디에 있으랴! 그러나 악마가 만들어낸, 국민 하나하나, 교육, 경제, 사법, 사회제도까지 죄짓기 쉽게 만든 나라에서 자란 이들은 착한 이들이 아니었다. 범죄가 몇 건 거센 언론을 탔고, 국경은 차차 닫혀갔다. 테러가 몇 건 더 사회를 뒤흔들자, 국경은 봉쇄되었다. 몇몇 동네가 망가졌고, 주 단위로 군용 트럭이 주기적으로 국경을 넘어 난민을 지옥당국에 넘겼다.
왜 타미엘은 세계를 전부 점령하지 않았을까? 약해서란 말도 있었고, 핵 보복 때문이란 말도 있었고, 혜성왕의 위협 때문이란 말도 있었다.
그러나 아나와 그 대화를 나눈 이래, 나는 정말 끔찍한 이론이 떠올랐다. 어쩌면 신은 러시아와 캐나다 사람들이 그 처지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해 죄를 용서해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타미엘은 자기 국민들의 영혼 따위 신경도 쓰지 않았을지 모른다. 진짜 노림수는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데 있었을지 모른다.
(혜성왕은 이 문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 의견을 모두 들은 뒤, 콜로라도 주의 국경을 닫고, 모든 위협이 대계획을 흔들 수 있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이미 미친 듯이 달리던 속도를 더 끌어올렸으니 — 잠을 끊고, 거의 모든 음식을 끊고, 밤마다 카발라 연구와 군사 계획에 몰두했다.)
(그러나 영혼은 여전히 신탁이니, 시장의 소란 속에서도 / 델피 신전 속 엄한 속삭임 귀 기울이라 / "타락과 타협할 때 그들은 자손의 자손까지 노예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