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에서는 소후라는 소녀와 대천사 우리엘의 만남, 카발라와 세상의 유지에 대한 신비한 대화가 그려진다.
1990년 9월 29일 멕시코만
하늘이 갈라진 이후로 루이지애나 해안에는 결코 움직이지도 쇠퇴하지도 않는 허리케인이 생겼다. 그 눈 속엔 대천사 우리엘이 서 있다. 그는 500피트의 높이였고, 그 주위로는 역사상 모든 문화의 알파벳·음절·자모로 이루어진 알록달록한 문자들이 흐르고 있다. 그것들은 미묘하고도 복잡한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어내다가 무지갯빛 섬광과 함께 사라진다. 가끔 그는 거대한 손으로 그 중 한 글자를 낚아채어 다른 흐름에 끼워 넣는다. 그러면 비가 내리거나, 제국이 무너지거나, 바다에서 새로운 섬이 솟아오른다. 하지만 오늘, 그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대신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매우 유심히 들여다보며 혼잣말을 하고 있다.
"티페렛. 태양, 아름다움, 기적. 하지만 또한 역전. 나무의 중앙에 놓인 거울, 보는 것을 반사한다." 그는 더욱 집중한다. "비나에서 헤세드로 흐르는 에너지의 파동, 그리고 헤세드에서 비나로의 반환 파동. 쿱(ק) 자. 하지만 두 번. 반사됨." 그는 멈춘다. "뭔가 빠져 있다. 티페렛이 아래로 네차크로 아치형 이동. 유드(י) 자. 유드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며 반사된 두 쿱."
그의 머리 주위를 감도는 색색의 문자 흐름이 더욱 거세진다.
"쿱. 유드. 쿱. 카약. 뭔가 중요한 일이 카약과 관련되어 일어나고 있다."
문자 흐름이 느려진다. 세계 어디선가, 카약과 관련된 뭔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일은 천상의 미묘한 실타래를 흔들 만큼 중요하다. 아시아의 강에서 예언자가 떠내려가는 중일까? 미래의 왕이 유럽에서 바다를 건너는 걸까? 카약이 비유적 의미일까? 시간의 강? 지식의 바다? 혹시…
카약이 구름 벽을 뚫고 시속 200마일로 튀어나와 우리엘의 머리 위를 1센티 차이로 비켜갔다.
"제발 도와주세요 조종을 못해요 누가 도와주세요 조종이 안돼요!"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약간 균형을 잃은 듯했지만, 대천사는 커다란 손을 내밀어 흐르는 카약을 붙잡았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얼굴 바로 앞으로 들어올리고 거대한 눈으로 들여다봤다.
"안녕," 대천사가 말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조종을 못 했어요…" 그녀는 말했다. 인간 치고는 어렸고 아마 일곱이나 여덟 살쯤. 연한 갈색 피부, 어두운 갈색의 눈, 땋은 검은 머리. 구명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명백히 겁먹은 상태였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저는 소후에요. 아빠가 저보고 카발라를 가르쳐달라고 우리엘님께 부탁하라고 했어요."
"음... 그건 내가 하는 일이 아니야. 그건 인간들이 하는 일로 알고 있다."
"아빠가 꼭 우리엘님이어야 한다고 했어요."
"난 바쁘다," 우리엘이 말했다.
그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젖은 채로 떨고 있는 소녀, 아직 노를 손에 쥔 채. 언덕보다 큰 대천사, 빛나는 흰 옷에 황금빛 날개를 단 채, 태양처럼 눈이 번뜩이고 있다.
"부탁드려요?" 소후가 물었다.
"바쁘다. 나는 지금 대륙 이동을 고치고 있다."
"…대륙 이동이 고장 난 줄 몰랐어요."
우리엘의 얼굴이 살아나더니 말이 빨라진다.
"5주하고 5일째 고장났다. 내가 뉴질랜드를 백업으로 복구했을 때 고장난 것 같은데 이유를 모르겠다. 내 동기화는 흠 잡을 데 없었고 모든 세피로트에 동시에 반영되었다. 누군가가 염소를 어미젖에 삶았던 것 같다. 항상 그거다. 하지 말라고 계속 말하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다."
소후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다가, 노를 무릎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카발라를 가르쳐 주시면, 저도 대륙 이동 고치는 걸 도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안돼," 우리엘이 말했다. "나는 천상 카발라를 다룬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다. 네가 고차원 세계의 유출을 만지려고 하면, 그것들은 네 손을 그림자처럼 통과해 지나갈 것이다."
소후는 손을 뻗어 그들 주위에 소용돌이치는 문자 중 하나를 뽑았다. 실타래를 당기듯 그것을 당겼더니, 여러 다른 글자가 실처럼 따라와 손에 뭉쳐졌다. 그 문자들은 파란 빛, 보라색, 그리고 꿈에서만 보는 이름 없는 세 가지 색 중 하나로 변했다. 곧 속도가 빨라지더니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다른 글자로 바뀌었다.
우리엘이 크게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온 몸이 급격히 바빠졌다. 소녀와 카약을 떨어뜨리자마자 빛나는 문자를 낚아채어 순식간에 새 무늬로 꿰매기 시작했다. 너무 빨라서 수십 개의 손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 같았다. 광대한 도안에 색의 파도가 흐른다. 소후가 아래 바다에 부딪치기 직전, 대천사는 다시 손을 뻗어 카약과 소녀를 집어들어 자기 얼굴과 다시 나란히 두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내가 뭘 한거죠?" 소후는 다시 공포에 얼어붙었다.
"네가 세상의 모든 강을 거꾸로 흐르게 할 뻔했다."
"정말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괜찮다. 고쳤다." 그리고는 "근데, 그걸 어떻게 한거니?"
"저 그냥 손을 뻗어서 그 글자를 잡았어요."
"그 글자들은 세계를 넘나든다.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것이다. 네가 만질 수 없어야 정상이다."
"며칠 전 밖에서 놀다가 저런 글자를 한 번 봤는데, 잡았더니 꽃이 막 자라나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아빠가 엄청나게 엄격한 표정으로 제가 날아다니는 카약을 타고 대천사 우리엘님을 찾아가서 카발라를 배워오라고 했어요."
"혹시 네가 그 소후냐?"
"소후라는 이름 가진 사람이 저 하나일 텐데요."
"아…"
둘은 서로를 바라봤다.
"너희 가족 중에도 이런 재능을 가진 이가 있니?"
"아니요, 다 물어봤는데, 아무도 귀를 흔들지도 못하더군요."
"아무도 귀를 흔들 수 없어."
소후가 귀를 흔들었다.
대천사는 완벽한 침묵 속에 서 있었다. 그의 주위를 문자의 실타래들이 머리 위, 팔 아래, 손가락 사이를 가로지른다. 가끔 두 줄이 충돌해 조용히 번쩍인다. 다른 한줄은 중간에 언어를 바꿔 상이한 부위로 갈라진다. 어떤 것은 벌떼처럼 몰려든다.
"괜찮으세요?" 소후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는 지금 귀를 흔들려고 시도했다."
소후가 다시 귀를 흔들었다.
"너 참 흥미로운 아이구나."
"그러면 카발라 가르쳐주실래요?"
"안된다."
"왜요?"
"네가 배우면 세상을 멸망시킬지도 몰라."
"안 그래요. 난 이 세상이 좋아요. 대륙 이동도 고쳐드릴 건데요."
"안돼."
"진짜 왜요?"
"네 재능을 제어하려면 매우 어려운 수준의 카발라가 필요하다. 하늘에서 글자를 낚아채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글자, 세피로트, 천사, 수천 가지의 상관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성경 전체를 암기해야 해."
"전 성경 다 알아요," 소후가 말했다.
우리엘의 큰 금빛 눈이 가늘어졌다.
"여호수아 1장 8절."
소후는 눈을 감으며 잠시 생각했다. "이 율법책이 늘 네 입에 있으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것을 모두 지키게 하라. 그러면 네 길이 복되고 네가 형통하리라."
"출애굽기 31장 3절."
"내가 너를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여 지혜, 명철, 지식과 모든 기술을 갖추게 하리라."
"제주보드 4장 33절."
"…제주보드는 성경에 없어요."
"있다."
"아뇨, 없어요."
"있... 어... 어?"
우리엘은 조용히 섰다. 문자의 흐름이 멎었다. 갑자기 대천사는 천사답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내가 인류에게 제주보드서를 주는 걸 깜빡했나봐."
"중요한 거였나요?"
우리엘은 어색하게 몸을 꼬았다. "음... 글쎄? 아니?"
"저 제주보드서랑 그 많은 걸 배우고 싶어요. 카발라 가르쳐주세요."
"안 돼."
"제에에에에에에에발요?"
우리엘은 카약 위에 앉은 작은 소녀를 응시했다. 잠시 계산. 만약 떨어뜨린다면, 그녀는 4.9초 만에 바다 표면에 초속 48.5m의 속도로 충돌하게 된다. 그 때의 에너지는 29.4킬로줄. 인간 두개골을 깨기엔 충분하다. 소녀의 아버지는 화도 내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이런 재능을 가진 아이를 그에게 보낸 의도가 뻔하니까.
내쫓는다고 해도 소녀는 언젠가 또 무심코 사소한 짓을 하다가 전 세계의 모든 강을 거꾸로 흘러가게 만들지도, 바다를 끓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백업으로 뉴질랜드를 복구하는 식으론 해결 안 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르쳐주면, 그녀는 언제든 바다를 끓일 수 있게 된다. 결코 개선이 아니다. 그리고 그는 동행을 싫어한다. 그리고 정말 바쁘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반대로, 4.9초 만에 모든 문제를 끝낼 수 있다.
그런데, 그는 한 번도 누군가를 직접 죽여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건 완전히 거짓이다. 지도 위 좌표 대칭을 깨뜨리는 마을들을 소비한 적 있다. 디버깅이 안 되던 대만을 지웠다. 홍해 대참사도 있었다. 흑사병을 만든 적도 있다. 멍청한 판 구조 맞추려고 지진도 일으켰다. 비를 멈추지 않아 벨기에가 물에 잠겨 수십만 명이 죽은 일도 있다. 하지만 "특정한" 인간을 죽여본 적은 없다.
잠깐, 그것도 거짓이다. 시스템 자원을 너무 많이 쓰는 자, 미완성된 시뮬레이션 영역에 진입하려는 자도 말살했다. 그리고 물론 염소를 어미젖에 삶은 자, 그럴 계획을 한 자, 그럴 듯하게 생긴 자 등도.
하지만 여덟 살 여자애는 한 번도 없었다. 특히 귀를 흔드는 아이는.
"이건 매우 어렵고 둘 다 전혀 즐겁지 않을 것이다." 우리엘이 말했다.
"전 정말 즐거울 거예요!" 소후가 말했다.
"여기 허리케인 안에서, 친구 하나 없이 지내야 할 거다."
"우리엘님이랑 친구 할 수 있어요!"
"이 세계는 점점 붕괴중이고, 곧 완전히 무너진다. 그 때까지 유지하는 일은 보람도 없고 지겹고, 한 시도 쉬면 모두 다 죽는다."
"제가 도울게요!" 소후가 말했다.
우리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내가 대륙 이동을 복구하는 동안 제주보드서를 통째로 외우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의 거대한 손가락이 알록달록한 문자의 흐름을 모아 구름을 만들었다. 그 위에 소녀와 카약을 올려놓았다. 또 다른 흐름에서 책을 만들어 소후에게 건넸다.
"읽어라," 그는 말했다.
1) 아합의 여덟 번째 해에 제주보드는 주님의 성전에서 번제를 드렸다. 2) 그리고 그는 말하길 "천지에 걸친 주님의 지혜시여, 나는 성경에 능통하나 많은 모순이 나를 괴롭힙니다. 3) 어찌하여 많은 대립이 있는가? 왜 의식적 정결에 그리도 집착하시는가? 어느 책이 문자 그대로 진실이고 어느 것은 교화용인가?" 4) 그 때 불꽃 구름 가운데 대천사 우리엘이 나타나니, 그 눈은 태양처럼 빛나더라. 5) 그는 크나큰 소리로 말했다. 6) "좋아, 이제부터 헷갈릴 일 하나 없이 전부 명확히 정리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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