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송》의 21번째 장. 샌프란시스코와 예루살렘의 기묘한 유사성과, 산 프란체스코, 초월적 기쁨, 보편적 사랑이 깃든 도시를 여행하는 아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언송
Work hard, play hard, converge to a transcendent and unified end state of human evolution called the Omega Point as predicted by Teilhard.
— @GapOfGods
**정오, 2017년 5월 12일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와 성서의 예루살렘의 닮음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유사하다.
예루살렘의 가장 높은 곳은 솔로몬 왕의 성전 산이였으나,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높은 곳은 이름부터 수상쩍은 마운트 데이비슨(Mount Davidson)이다. 성전의 북쪽에는 티베리아스로 이어지는 황금문(Golden Gate)이 있었고, 마운트 데이비슨의 북쪽에는 티부론으로 이어지는 금문교가 있다. 예루살렘 중심의 남서쪽에는 로마군의 병영(라틴어: castrum)이 있었고, 샌프란시스코 중심의 남서쪽에는 카스트로 지구(Castro District)가 있다. 예루살렘의 남쪽에는 유황 골짜기, 게헨남(Gehenna)이 있었고 샌프란시스코 남쪽에는 실리콘밸리가 있다. 예루살렘의 동쪽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거대한 분뇨 더미가 있었고, 샌프란시스코의 동쪽에는 오클랜드가 있다. 신기하게도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예루살렘의 동문은 밥 알-부라크(Bab al-Buraq)라 불리며, 샌프란시스코의 동문은 베이 브릿지(Bay Bridge)라 한다. 밥 알-부라크는 십자군 전쟁 이후 벽돌로 막혀있고, 베이 브릿지는 1970년대 이후 봉쇄되었다.
아나 서먼드는 이름을 외워 잠적했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채 검문소를 지나쳤다.
밥 알-부라크 안쪽에는 성전 보물이 있었고, 베이 브릿지 검문소를 지나면 트레저 섬(Treasure Island)이 있다. 성전 보물은 한때 템플 기사단의 근거지가 되었고, 트레저 아일랜드는 미 해군 기지가 되었다. 두 군대 모두 몇십 년 후 기지를 버렸지만 "언젠가 옛 영광을 되찾으리라"는 예언을 남겼다. 성전 보물은 메시야의 도래와 제3성전이 세워질 때, 트레저 아일랜드는 환경 영향 평가가 끝나고 부동산 개발 허가가 날 때. 어느 쪽이 먼저일지는 신만이 아신다.
아나는 트레저 아일랜드를 지나 예르바 부에나(Yerba Buena) 터널로 들어섰다. 예루살렘에도 공성전을 대비해 만든 터널이 있다. 그 중 일부에는 고대 페니키아-히브리 문자로 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비문이 새겨져 있다. 예르바 부에나 터널 앞에는 표지판이 있었다.
1972년 캘리포니아 안보법 제22조 10항에 따라:
본 구역은 제한구역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 구역을 지나면 불법입니다
위반자는 치명적 무력 사용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아나는 터널을 빠져나와 다리의 후반부로 걸어갔다. 태양이 작열했다. 다리는 망상인지 꿈처럼 일렁였다. 도시가 한 발짝씩 다가오는 듯 했다.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은 신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고, 그 빛이 귀중한 벽옥과 같이 맑고 투명하다" 하였다. 샌프란시스코의 건물들은… 제각각이다. 아나는 그 모습을 멀리서 보았다. 버클리의 한 공원에서는 만에 걸터앉아 샌프란시스코를 바라볼 수 있다. 1970~80년대에는 이상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새 고층빌딩이 세워지고, 오래된 건물은 해체되고, 트랜스아메리카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거대한 눈이 떴다. 무지갯빛의 나선 첨탑, 공중에 떠있는 대형 구체, 금문교의 북쪽은 빛나는 안개에 뒤덮였다.
이제 아나는 베이 브릿지를 건너 그 광경을 처음으로 눈 앞에서 보게 된다. 예상보다도 더 괴상하고 아름답다. 보도에는 금색 분필로 쓰여진 카발라 도형이 가득하다. 벽에는 외계 세계의 벽화, 자연에는 철따위의 꽃들이 만개했다. 아이들은 진주같이 하얀 아스팔트의 차 없는 도로에서 논다.
("이같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다시는 노인과 노파가 예루살렘 거리마다 앉게 되리라. 그리고 그 도시는 거리에 아이들로 가득하리라" – 스가랴서의 예언)
"초월적 기쁨." 아나가 지나갈 때 꼬마가 그녀에게 말했다. 아나가 보이지 않는 것도 잊은 듯. "보편적 사랑," 그와 놀던 여자아이가 말했다. "거룩, 거룩, 거룩!" 그들의 강아지가 짖었다.
노인이 빗자루로 길을 쓸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사랑에 빠진 청년처럼 빛나 보였다. "초월적 기쁨." 노인은 말했고, 아나는 어색하게 "고마워요"라 대답하며 잠입 상태를 풀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투명해도 소용 없어 보였다. 이들을 이렇게 만든 무언가가 –
잠깐, 아나는 생각했다, 방금 개가 정말 "거룩하다(holy)"라고 짖은 거야?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성인 중에서도 유달리 거룩했다.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이었기에 사치, 스포츠, 향락 속에서 자랐다. 어느 날 아버지의 천을 팔러 외출하다 구걸하는 거지를 만났다. 프란체스코는 동전을 하나 던져주고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몇 분 뒤 그는 거지를 쫓아가 가진 모든 것을 줬다.
분노한 아버지는 그를 전쟁에 내보낸다. 전투로 향하던 중 프란체스코는 방어구가 더 낡은 기사에게 자신의 갑옷을 내주었다. 병사의 자질도 상인의 자질도 없는 셈이었다. "봐라," 장터에서 천을 팔던 아버지가 말했다. "선을 실천하는 것도 좋지만, 균형이 있어야 한다. 주고받는 거지. 적당한 게 최고다."
(하지만 영혼은 여전히 영검히 예언한다, 시장의 소음 속에서 / 델피계 동굴로부터 위협적인 낮은 목소리를 들어라 / 죄와 타협을 선택한 자들의 후손은 결국 영혼의 족쇄를 자처한다)
("난 죄와 타협하라는 게 아니라, 네가 항상 최대한 성인처럼 살 필요는 없다는 거야.") ("죄와 타협이란 게 정확히 뭔지 아니?")
누구나 추상적으로는 선을 좋아한다. 더 선한 일이 더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항상 실천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과하다며 ‘초과 의무’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 같은 말을 핑계 삼는다. 나름 할 만큼 하면 자기 합리화를 하고, "내 모든 걸 거지에 주면 내 자신도 거지가 될 거 아냐"라든지 "난 성인이라고 한 적은 없어"라며 핑계를 댄다.
성 프란체스코는 자신의 옷을 거지에게 주고 거지의 누더기를 입었다. 영원한 청빈을 맹세하며 로마에서 빵을 구걸했다. 슬럼가에서 나병 환자를 돌봤다. 폐허가 된 교회를 손수 돌로 하나씩 다시 세웠다. “네가 완전해지려거든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라”는 성경 구절을 보고 실천했으나, 다른 이들은 왜 안 그러는지 의아했다. 망토를 도둑맞자 그를 쫓아가 또 한 겹 더 벗어주었다.
수천 명이 따랐고, 그는 몇 주씩 단식했다. 교황은 그에 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는 십자군 전쟁을 멈추겠다며 무일푼, 무방비로 이집트 술탄에게 기독교로 개종하라고 설득하러 갔다. 이집트에서 그는 잡혀 죽도록 얻어맞았지만, 술탄 앞에 나아갈 수 있었다. 프란체스코는 몸의 먼지를 털고 일어나 세상 모두가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술탄은 감명을 받아 즉석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이 기록은 모두 기독교인 후대 역사가의 것).
그 후 프란체스코는 만나는 모든 존재에게 복음을 전했다. 새 떼의 울음소리가 설교를 방해하자 그는 새들에게 하늘과 깃털을 주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였고, 새들은 울음을 멈추고 그와 함께 기도했다. 늑대가 마을 주민을 물어 죽이자, 그는 인간이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음을 떠올리게 하였고, 늑대는 부끄러워하며 마을에 들어와 용서를 구했다. 크리스마스 마구간 장면(구유)을 처음 시도했다. 환상 속에서 천사를 보았다. 예수의 성흔을 닮은 상처가 이유 없이 나타났다.
“항상 하나님에 대해 전하라. 필요하다면 말로도 하라.”
내가 카발리스트라면, 이름에는 힘이 있다. 스페인인들이 캘리포니아에 그를 따서 미션 산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Mission San Francisco de Asís)라는 교회를 세웠다. 그런 이름을 주면 뭔가가 일어난다. 카운터컬처와 사랑과 관용의 핵심지가 되고, 예루살렘과 닮은 지리적 특징이 생기고, 그리고 하나님의 오른손이 마운트 데이비슨 위로 내려와 약물에 취한 히피의 몸을 빌려 도시 특화된 메시야적 시대를 열게 될 수 있다.
모든 일은 1970년 며칠 만에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6월 초만 해도 고층 빌딩 건축 논의, 6월 말엔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사람이 대부분. 게다가 이건 전염성마저 있었다. 충분히 오랫동안 이 도시에 있으면 누구나 감염되었던 것.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상태도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도시 전체가 인적재해 방지 구역으로 봉쇄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무런 불편도 없는 듯했다.
“진정한 종은 악인을 끊임없이 꾸짖으나, 무엇보다도 그의 삶의 빛, 행동, 진실의 언어, 삶의 광휘로 그리함이 가장 크다.” 프란체스코는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설명 못하지만, 도시는 스스로 자족하며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여겼다. 세계는 도시 주변에 군대를 배치하고, 그 모범을 최대한 오래 무시하려 했다.
도시가 바깥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던 시절의 낡은 지도들. 아나는 마켓 스트리트, 롬바드 스트리트, 임바카데로 등의 이름을 떠올렸지만, 실제로 그런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길 표지판들은 모두 사라지고, 대신 엔옥어(천사의 언어)로 새겨진 입석들이 높이 세워져 있었다.
아나는 항구를 따라 걷기로 했다. 공식적인 공공건물을 찾아 등록하거나 누가 이 도시의 책임자인지 알아볼 요량이었다. 옛날에는 도시를 찾은 이들이 며칠 만에 토착 사람이 되곤 했다. 아나는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기에, 카발라 서적을 구해서 비탈 이름(Vital Name)을 복구한 뒤 바로 나갈 생각이었다.
가로등의 전구는 눈동자로, 우체통은 벽옥, 주차 미터기는 홍옥으로 바뀌어 있었다. 갈매기들은 지붕 위에서 “거룩, 거룩, 거룩!”이라 외쳤다.
한 음식 노점상이 그녀에게 추로(Churro)를 건넸다. 아나는 당황하며 미국 달러밖에 없다 했으나, "이 음식은 하나님께서 주셨고, 당신은 그의 자녀이니 하나님의 자녀가 굶도록 내버려 두시겠느냐"며 돈을 받지 않았다. 아나는 부두에 앉아 추로를 먹고, 흑요석과 전복 껍질로 된 급수대에서 물을 마셨다. 바다에서는 바다사자들이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놀고 있었다.
이제 한낮, 태양이 내리쬐고, 거리의 색이 7초 주기로 빨-노-초-파-보-빨로 계속 바뀌었다. 대낮인데 별이 또렷했고, 바다사자들이 "거룩, 거룩, 거룩!"이라 짖자, 갈매기들이 "보편적 사랑!"이라 응수했다.
골든 리트리버를 산책시키던 여자가 아나에게 "보편적 사랑"이라고 했다. 강아지는 "초월적 기쁨"이라 짖었다. "모든 것은 영원부터 완벽했어," 여자가 강아지에게 말하자, 개는 조용해졌다.
물가에서 몇 분 올라가면 언덕 위에 탑이 있었다.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아나는 해안을 떠나 경사지 내륙으로 걸어올랐다. 길은 나선형 같기도 헷갈렸다. 구름은 10개씩, 각기 다른 종류로 몰려왔다. 이는 중요한 암시라 여겨졌다. 오른편의 마당에는 두 남자가 군청색 붉은 마코앵무 떼와 이야기를 나누고 앵무들은 경청하고 있었다.
"보편적 사랑!" 한 마코가 소리쳤고, 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탑에 도착했다. 당연히 나선형 계단이 있었다. 내부는 형형색색 벽화로 장식되어 있었다. 신문을 구기는 남자, 도서관, 무한한 과수, 거대한 기계, 파괴의 장면, 눈이 빈 사람들, 구름 속을 수영하는 여성, 번개 위에 태양과 달이 떠 있는 문. 상징은 모호했다.
아나는 문을 통과해 탑 꼭대기에 도달했다.
하늘은 이제 분명 유리로 만든 것처럼 보였고, 그 위에 기어와 전선이 돌아가는 ‘밤의 기계장치’가 보였다. 그녀는 그 기계와 샌프란시스코의 맥박이 연결됨을 보았다. 도시의 숨겨진 패턴, 마운트 데이비슨을 중심으로 정돈된 것을 꿰뚫어보았다. 그녀는 원하면 순식간에 거기로 갈 수 있었지만 필요하지 않았다.
아나는 제피르(Zephyr) 이름을 불러, 기쁨에 겨워 바람을 불렀다.
시로코, 스콜, 몬순, 데레초, 미스트랄, 레반테, 트라몬타나, 하붑, 마랭, 시무운—all 바람이 그녀 앞에 모였다.
아나는 이런 방식으로 이름을 불러본 적 없었다. 전에는 단지 먼 신적 존재의 호칭일 뿐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이 그녀와 함께 계셨다.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는 것이, 하나님이 어디에나 충만히 깃들어 계시기 때문이라 했다.
마지막으로, 그녀 자신의 이름을 딴 바람, 산타 아나가 왔다.
아나는 바람 속에서 춤추며 미쳐버릴 듯이 노래하고 웃었다. "거룩, 거룩, 거룩!" 그녀는 노래했고, 바람은 그 소리를 사방으로 전했다. 잠시 동안 그녀는 시간의 바깥을 경험했다. "초월적 기쁨!" 그녀는 달 세상 아래에 갇힌 가련한 이들을 향해 외쳤으나, 그들은 듣지 못했다.
누군가 그녀의 몸, 탑에 남아 있는 부분을 붙잡았고, 그게 별 의미가 없다는 듯했다.
"멈춰!" 남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돌아와야 해!"
아나는 창공을 날았다. 트랜스아메리카 피라미드를 돌 때, 거대한 눈이 그 궤적을 차분히 지켜보았다.
"들어! 1+1=2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 P면 아닌 아닌 P. 가격은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 이것만이 희소성을 관리하는 공정한 방법이다."
아나는 고도를 잃기 시작했다.
"생물은 자연선택 법칙에 따라 진화한다. 번식에 적합한 유전자만이 다음 세대로 간다. 음… 죄의 삯은 죽음이다. 누구나 죽는다. 폐쇄계에서 엔트로피는 늘어난다."
아나는 팔을 퍼덕였다. 되찾으려 했으나, 원래부터 날개로 날았던 건 아니었다. 좀 더 추락했다.
"물질은 창조도 소멸도 불가하다. 음, 미적분. 상품에 세금을 매기면 생산이 줄어든다. 빛의 속도 한계. 수학적 체계는 그 자체의 일관성을 증명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모순된다."
아나는 부드럽게 어디엔가 착지했다. 더 이상 탑 위가 아니었다. 부두 위였다. 사람들이 물을 끼얹고, 손을 잡고,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죄수의 딜레마! 원둘레 제곱 못함! 원자와 허공만 실재, 나머진 의견! 악화가... 아니, 얘들아! 그녀가 깨어났다!"
아나는 황홀한 꿈에서 깨어난 듯 미소지었다. 주변의 남자들이 환호하며 서로의 등을 쳤다. 아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 앞엔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배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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