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는 UNSONG의 습격을 피해 달아나게 된다. 그녀는 새로운 힘을 얻고, 실종된 애런을 구출할 임무에 직면한다. 그 과정에서 사라에 관한 미스터리가 깊어진다.
2017년 5월 11일, 산호세
I.
전도서에 따르면 시간과 우연은 모두에게 일어난다. 아나는 오늘 늦잠을 자려고 했지만, 어쩌다보니 배가 고파 일어났고, 우유가 떨어진 걸 알게 됐다. 2년 전 신정론(theodicy) 컨퍼런스에서 받은 WHO WATCHES THE WATCHMAKER?(누가 시계공을 감시하는가?)라고 쓰인 낡은 티셔츠를 걸치고 장바구니를 챙겨 모퉁이 7-11로 향했다.
7은 세상을 상징한다 – 그래서 창조의 7일, 심연(Abbyss) 아래에 있는 7개의 세피라, 7대륙이 있다. 11은 초과를 뜻한다. 초자연적 완전성인 10을 넘어선 불법적 형태의 번식이다. 둘을 더하면 18이 되고, 이는 히브리어로 삶(“하이”, chai)의 게마트리아다. 그러므로 7-11은 세상적인 생명 유지 물품의 과다를 의미한다 – 즉, 음식이 너무 많다는 것.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법칙에 따라, 아나는 결국 도넛 상자를 산다.
밴을 봤을 때, 그녀는 잠시나마 짜증나지만 또 귀여운, 자신에게 호감이 있으나 그냥 참아주는 아마추어 카발리스트 애런이 아직 스탠포드에서 책을 찾고 있길 바랐다. 그러나 거리 전체가 어둠에 잠기고 총성이 들리자, 그 희망도 사라진다.
한편으론 돌아가서 도와주고 싶었지만(뭐로? 식료품 봉지를 무기로?), 또 한편에선 UNSONG이 컴퓨터를 차지하기 전에 파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몇몇 이름(네임)은 알았다 – 내가 아는 만큼은 아니지만. 하지만 무기로 무장한 상대와 마법 대결을 벌이는 건 바보짓임을 알았기에, 결국 우유와 도넛이 담긴 가방을 들고 도망친다. 왜 가방을 안버렸는지, 아마 공포에 빠지면 판단력이 마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5분을 뛰어 베리에사(Berryessa) BART 역에 도착해 헐떡이며 카드를 찍고 개찰구로 들어간다. 거의 바로 전철이 온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탄다. 일단 도망가야 하니, 최대한 멀리 UNSONG이 추적하기 힘든 곳으로. 한 시간 반쯤 지나 플레전튼(Pleasanton) 역에서 내린 뒤 역과 거리를 최대한 벌린다. 주차장과 주택가를 10분가량 더 달려 도로 옆 들판에 주저앉아 숨을 고른다.
그리고 울기 시작한다.
에리카 – 사촌. 애런 – 이상하지만 플라토닉한 친구이자 (시험 삼아 결혼한) 남편. 모든 룸메이트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애런이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 스탠포드에서 무슨 일이? 도드에게 말했다면? 단순한 우연인가? 우리가 유니테리언 모임을 열거나, 보호된 네임을 오용하거나, 세상을 장악하려 한 것 때문인가? 누군가 죽었을까? 검은 밴에 탄 이들은 진짜 심각해 보였다.
[애런?] 그녀는 마음속으로 물었지만 아무 응답이 없다.
이서카(Ithaca)로 돌아갈 순 없다. UNSONG이 지켜보고 있을 테니. 레드우드시티에 있는 부모에게도 못 간다. 만약 그들이 우리의 조사의 범위를 알게 됐다면, 그쪽도 감시받을 것. 북베이에 유니테리언 지인은 있지만, 이서카까지 알았다면 거기도 UNSONG이 이미 침투했을 수 있다. 친구들도 안전하지 않다. 그들이 진짜 친구인지조차 모른다.
자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슨 죄로? 혹시 에리카가 무슨 사고를 쳤고, 그 탓에 비탈 네임(Vital Name)에 대해 떠벌려 애런과 에리카까지 위험에 빠뜨린다면? 혹시 네임 오류 교정 서적을 찾아낼 수 있다면? 비탈 네임의 꼬인 버전만 있어도 그걸 고쳐 애런 없이 계획을 완수할 수 있다. 세상을 장악하면 예의 바르게 UNSONG에 친구들을 돌려달라고 하자. 이 정도 판에 포기한다는 생각은 끔찍했다.
그러니 도망자가 되는 수도 있다. 이름 오류 교정 책이나 믿을 만한 카발리스트를 찾을 때까지 한없이 도망칠 수도 있고, 그 뒤 컴퓨터를 다시 구해 시도할 수도 있다.
지갑엔 105.42달러와 신용카드 몇 장(모두 추적 가능)이 있다. 에리카가 한때 ‘경찰 엿 먹어라’는 분위기로 만들어 준 가짜 신분증도 있다. 그리고 처음으로 가방에 우유와 도넛이 있는 것을 자각한다. 도넛을 몇 개 먹는다. 진짜 맛있다.
근처 도서관을 찾아간다. 사서는 이름 오류 교정 서적은 아주 전문적이어서 UC버클리나 스탠포드의 특수 도서관을 가야 할 것이라 한다. 그녀도 그럴 거라 짐작했다. 감사 인사를 하고 근처 호텔방을 74.99달러나 주고 잡은 뒤 곧장 침대에 쓰러진다.
그때 책상 위 노트북이 사라임을 알아챈다. 반쯤 잠이 든 채로.
II.
아나는 노트북을 유심히 살펴본다. 들어올 때 있었었나? 단순히 투숙객용 공용 노트북이라 치부했었나? 이런 저렴한 호텔에선 좀 드문 일이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그 노트북은 분명 사라다. 똑같은 NE-1 시리즈. 뚜껑에 난 긁힘 자국까지 동일하다. 옆면에 ‘AARON’이라고 검정 펜으로 쓴 글씨도.
아나는 창밖을 살핀다. 별 일은 없다. 침대 아래도 본다. 아무도 없다. 매우 조심스럽게, 혀끝에 네임을 올리고 문을 살짝 열어본다. 아무도 없다. 처음부터 여기 있었거나, 아니면...?
하지만 말이 안 된다. 호텔을 만난 것도 우연이었고, 프론트에서 1층과 2층 가운데 어떤 방 쓸지 직접 골랐다. 얼마나 제정신이 아니었을까? 혹시 모르고 잠든 사이 누군가 들어와 노트북을 놓고 사라졌나?
떨리는 손으로, 언제 체포당할지 모른 채 노트북을 켠다.
사라 미셸 겔러의 익숙한 사진이 반긴다. 룰은 사라졌다. 브라우저도 없다. 바탕화면엔 텍스트 파일 ‘README’ 하나만 남았다. 아나는 읽는다.
AARON SMITH-TELLER는 캘리포니아 아이온 남서쪽 1마일 UNSONG 비밀 구금 시설에 감금되어 있음. 구출 시도 권장. 아래 네임 사용. 절대 잘못될 일 없음. 지금 떠나라. 이곳은 안전하지 않다.
그리고 전혀 모르는 3가지 네임(이름)과 설명이 이어진다. 첫 번째는 투명 네임: 투명화. 두 번째는 공행 네임: 공중 보행. 세 번째는 미스트랄 네임: 바람을 부름(약간 섬뜩한 설명).
아나 서먼드, 어거스틴 신정론 특훈 석학이자 나름대로 똑똑한 사람, 역시 할 말을 잃는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본다. 첫 번째 네임을 읽는다. 투명해진다.
"유피미즘!"(Euphemism!) 하고 충격에 차 말하자 곧 다시 모습이 드러난다.
이제 판이 달라졌다. 투명화시키는 네임이란 건 없었다. 있었다면 군대가 적을 상대할 때 무장한 부대를 굳이 드러내고 공격하는 바보짓을 안 했을 것이다.
천사들이 비밀 네임을 알고 있다는 설, 혜성왕이 모든(존재했던, 존재할) 네임을 알고 있다는 설, UNSONG이 대규모 네임 비축고를 독점했다는 설 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었다. 간혹 카발리스트들이 운 좋게 무언가(가령, SCABMOM)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투명화 비밀을 쥐고 있다면...
함정인가? 구출하라고 UNSONG 본부에 귀중한 마법 자원을 아무 무장 없이 들고가라고 하는 것이란 점이 의심스럽다. 그러나 이미 위치도 알고 사라도 갖고 있다면 함정이 소모적이라는 점이 반대 논리.
잠깐. 사라. 이것을 해낸 자는 사라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일 수 있다. 컴퓨터의 힘을 안다면 그냥 넘겨주지 않을 텐데? 그런데, 애런이 UNSONG에 잡혀 있는 것까지 알고 있을 만큼 알면서 왜 체포 이유(비탈 네임)까지 모를까? 만약 그냥 유니테리언 단속이라면, 왜 아나에게 세 개의 새로운 네임을 주고 구출가라고 할까? 그리고 그렇게 강력하면 직접 구출하지 않는 이유는? 으아! 생각할수록 더 혼란스럽기만.
README 파일을 최소화하고 컴퓨터를 다시 본다. 사라 미셸 겔러 월페이퍼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지워져있다. 혹시 다른 컴퓨터로 옮겼을까? 아니면 이건 사라의 껍데기일 뿐 진짜 사라는 다른 어딘가에?
초유능한 비밀 조직이 애런의 포르노 컬렉션을 손에 넣었다면 애런이 얼마나 경악할지 생각하다 그만 웃음이 터진다. [이건 전혀 웃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곧 다시 투명화한다. 몸의 위치 감각, ‘나는 여기 있다’는 정확한 감각은 그대로인데, 확실히 투명하다. 옷까지 투명하다.
"허," 하고 말하자 곧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사라를 가방에 집어넣고, 다시 네임을 말한다. 가방과 내용물까지 다 투명해진다.
"와우"라고 하자 다시 나타난다.
플라톤은 기게스(Gyges)라는 덕망 높은 남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어느 날 그는 투명화 반지를 손에 넣고, 이후로는 들키지 않을 것을 알고는 온갖 도둑질을 일삼는다. 플라톤은, 권력을 쥐면 덕이 별 의미 없다고 말한다.
아나는 이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덕은 내면의 것이고, 옳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지, 처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플라톤이 기게스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호텔을 나서며 그녀는 점원의 코앞에서 현금 서랍에서 300달러와 도넛을 담을 배낭까지 훔친다. 그래도 기게스를 변호하듯, 이 호텔은 거대한 악덕 기업이고 노동자에게서 돈을 훔친 셈이라 자기합리화한다.
컴퓨터를 가져갈지 잠시 고민한다. 가져가다 잘못되면 UNSONG이 사라를 가져갈 테고, 그렇지 않으면 이곳(위험한 호텔)에 두고 돌아와야 한다. 결론은 어차피 잡히거나 애런을 구출 못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노트북을 도넛이 든 배낭에 넣는다.
그런 뒤 모습을 드러내고 택시를 불러 아이온까지 요금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