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를 말로 표현하기

ko생성일: 2025. 5. 27.

아이디어를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더욱 명확해지고 완전해진다. 이 글에서는 글쓰기의 도전과 중요성, 그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통찰에 대해 설명한다.

아이디어를 말로 표현하기

이미지 1: 아이디어를 말로 표현하기 2022년 2월

무엇에 대해 글을 쓸 때, 그 주제를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해도 실제로 글을 써 보면 생각만큼 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이디어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엄격한 시험이다. 처음 선택하는 단어는 대개 틀리기 쉽고, 문장을 정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번 다시 써야만 한다.

또한 아이디어가 단순히 부정확한 것에 그치지 않고, 불완전하다는 것도 드러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생각이 전체의 절반 가까이 된다. 실제로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을 발표하면, 통상적으로 그 글에 담긴 생각이 작성하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자신도 글을 쓰면서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지 잘 안다. 그리고 공개한 생각만 변한 것이 아니다. 글로 다듬기엔 너무 엉성해 포기한 생각들도 있었을 것이다.

글쓰기가 이렇게나 엄격한 이유는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인 단어로 옮겨야 해서만이 아니다. 진짜 시험은 자기가 쓴 글을 읽는 데 있다.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 되어, 머릿속이 아닌 오직 글에서만 정보를 받아들이는 중립적인 독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독자가 읽었을 때 그것이 온전하고 정확하다고 느껴지는가? 노력하면, 자신이 쓴 글을 완전히 모르는 타인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데, 이때 대개 결과는 실망스럽다. 낯선 독자를 통과하기까지 보통 여러 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그 낯선 독자는 합리적이므로, 그가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면 통과시킬 수 있다. 어떤 점을 빠뜨렸거나 너무 단정적으로 적었다면, 그 점을 설명하거나 적당히 조건을 추가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멋진 문장을 희생하게 될 수도 있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글의 품질은 최대한 높이되, 그래도 낯선 독자가 만족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큰 이견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비트관적인 주제에 대해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생각이 아주 완벽하게 서서 글로 곧바로 흘러나오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나, 나는 본 적이 없고, 그런 말을 듣는다면 오히려 그 사람의 한계를 보여주는 증거라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어렵고 복잡한 계획을 가진 사람이 "모두 머릿속에 있다"고 주장하면, 시청자들은 그게 결국 막연하거나 결함이 있을 것임을 직감한다. 기껏해야 계획의 틀만 잡힌 것이다.

엄밀하게 정의된 영역에서는 머릿속에서 완전한 아이디어를 구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체스를 두거나, 수학자들이 머릿속에서 계산하거나 증명을 전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공식 언어로 표현 가능한 아이디어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1] 사실 이런 이들이 하는 일도 머릿속에서 '말로 표현하는' 작업에 가깝다. 나 역시 어느 정도 머릿속으로 글을 쓸 수 있다. 걸으면서나 누워있을 때 문단 하나를 거의 그대로 완성본까지 가져가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때도 실제로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이고, 손가락만 움직이지 않을 뿐 정신적으로는 글쓰기 과정이다. [2]

어떤 것에 대해 굉장히 많이 알 수도 있지만, 그것에 대해 글로 설명해보지 않고도 익힐 것을 모두 알게 된다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 아는 리습 해킹이나 스타트업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도 새롭게 배운 점이 많았다. 쓸 때 비로소 의식하게 된 부분이 많았다는 뜻이다. 이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오히려 전문가일수록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가 모든 아이디어를 탐구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뜻은 아니다. 건축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직접 건물을 지어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익혔다 하더라도,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배울 점이 반드시 있다.

아이디어를 말로 표현한다는 게 꼭 글쓰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 방식처럼 말을 하면서 풀어내도 된다. 하지만 내 경험상 글쓰기가 훨씬 더 엄격하다. 가장 적절한 단어와 순서를 정해 선택해야 하고, 말할 때처럼 억양이나 분위기로 의미를 보완할 수 없다. 그리고 대화에서는 너무 집요하게 다뤄질 수 있는 부분도, 글에서는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한 편의 에세이에 2주를 들이고 50번 넘게 퇴고하는데, 대화에서 이런 식이라면 오히려 어딘가 이상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글쓰기든 말이든 다 소용없지만, 제대로 아이디어를 검증하고자 한다면 글쓰기가 훨씬 더 가파른 언덕이다. [3]

이렇게 자명한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충격적으로 느낄 수도 있는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디어를 글로 정리하면 반드시 더 명확하고 완전해진다면, 아직 한 번도 글로 써본 적 없는 주제에 대해선 그 누구도 완전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글을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이는 비트관적인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완전한 생각을 갖고 있을 수 없다.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자기 생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습관이 없는 이들은 본인이 온전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말로 표현하려 들면 그것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만약 아이디어를 말로 표현하는 검증을 한 번도 거치지 않았다면, 완전한 생각을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사실조차도 모른다.

아이디어를 말로 표현한다고 해서 완전히 옳은 생각이 됨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디어의 완전성에 충분조건은 아니어도, 필수조건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1] 기계 구조나 회로는 공식 언어다. [2] 이 문장은 내가 팔로알토 길을 걸으며 떠올렸다. [3] 누군가와 대화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엄밀하게는 말로 하는 대화이고, 더 넓게는 글을 포함해 어떤 형태든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예: 세네카의 편지)에는 두 번째 의미의 대화가 에세이 쓰기와 같다. 실제로 글을 쓰는 중이라면 이런 의미의 대화, 즉 피드백이나 토론, 모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말로 하는 대화가 글을 다듬는 것보다 더 엄격할 수는 없다.

감사의 글: Trevor Blackwell, Patrick Collison, Robert Morris에게 이 글의 초안을 읽어준 데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