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군의 헤비 프레스 프로그램이 초대형 단조·압출 프레스를 구축해 항공우주 제조를 혁신하고, 그 공학·제조·경제적 파급효과를 낳은 과정을 살핀다.
알코아 5만 톤 단조 프레스.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 미국 군용기 설계에 혁명이 일어났다. 제트엔진의 발명으로 항공기가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높고 빠르게 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빠른 프로펠러기조차 수평비행에서 시속 500마일에 약간 못 미쳤지만, 1950년대 중반의 제트기들은 시속 1,300마일, 즉 음속의 두 배로 비행했으며 더 빠른 기체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런 성능을 달성하려면 강력한 제트엔진뿐 아니라 인코넬과 티타늄 같은 신소재와, 훨씬 더 강하고 가벼운 항공기 부품을 만들어낼 제조기술의 집합이 필요했다.
유력한 기술적 진전 중 하나가 대형 단조품 또는 압출품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단조(forging)는 보통 망치질이나 거대한 프레스로 금속을 눌러 압력을 가해 형태를 만드는 제조법이다. 압출(extruding)은 적절한 형상의 구멍으로 금속을 밀어 넣어 성형하는 유사한 공정이다. 당시에도 단조와 압출은 항공기 부품 제작에 쓰였지만, 부품 크기에는 한계가 있어 수백, 수천 개의 패스너로 이어 붙여야 했다. 아주 큰 단조품과 압출품으로 작은 부품 여러 개를 대체하면, 부품을 더 얇고 가볍고 강하게 만들 수 있다. 공력 표면을 더 매끈하게 하고, 씰도 더 단단히 밀봉할 수 있다. 또한 수많은 개별 부품(그리고 그것들을 조립하는 시간과 노력을 포함)을 없앰으로써, 대형 단조·압출은 항공기 제작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잠재적으로 줄일 수 있다. 주조나 판재/빌렛 가공처럼 거대한 부품을 만드는 방법은 여럿 있었지만, 단조와 압출에는 몇 가지 뚜렷한 장점이 있었다.
…판재나 빌렛을 가공하는 것은 거대한 기계와 많은 기계 가공 시간을 요구한다. 판재나 빌렛에서 가공한 부품은 최종 또는 거의 최종 치수로 단조나 압출한 부품만큼 기계적 성질이 균일하지 않다. 두꺼운 판재나 빌렛의 중심부 기계적 성질은 의문이다. 단조는 추가적으로 가변적인 결정립 방향을 갖는 장점이 있어 특정 설계의 응력 패턴에 맞춰 조정할 수 있다. [가공 시] 칩으로 사라지는 재료 비율이 매우 높은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주조 재료는 물성이 충분히 높지 않고, 주조 기술도 아직 효율적인 금속 분배와 얇은 두께를 얻을 수 있을 만큼 발달하지 않았다. –Symposium on Heavy Presses
하지만 단조나 압출의 크기는 그것을 만드는 프레스의 크기에 제한된다. 매우 큰 단조·압출을 만들려면 전례 없는 크기의 프레스를 지어야 했다. 10층짜리 건물 높이에 수억 파운드의 하중을 가할 수 있는 기계가 필요했다.
1950년대, 미 국방부는 그런 프레스를 건설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헤비 프레스 프로그램(Heavy Press Program)’으로 알려진 이 사업은 대형 단조 프레스 4기와 압출 프레스 6기의 건설에 자금을 댔다. 완공 시점에 가장 큰 프레스들은 세계 최대였다.
프로그램은 대성공이었다. 프레스가 생산한 대형 부품은 군용기의 비용을 크게 낮추고 성능을 높였을 뿐 아니라, 헬리콥터·잠수함·우주선·상업용 제트기 같은 분야의 부품 제작에도 유용했다. 대략 10년 안에 프레스들은 제조비 절감만으로 투자액의 두 배 이상을 상회하는 수익을 냈고, 이후 수십 년간 복잡하고 고품질의 단조·압출 부품을 계속 생산했다. 10대 중 6대는 오늘날까지도 가동 중이다.
헤비 프레스 프로그램의 기원은 1920년대 독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르사유 조약의 조건으로 독일은 서부의 많은 철 생산 지역을 상실했고, 그 결과 만성적인 철과 강철 부족에 시달렸다. 이는 마그네슘과 알루미늄 같은 다른 금속의 활용을 촉진했다. 독일은 1880년대부터 마그네슘을 상업 규모로 생산한 최초의 국가였고,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의 개발과 사용에서도 초기 선도자였다.
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은 망치질에 의한 성형에는 취약(특히 마그네슘은 잘 깨짐)하지만, 유압 프레스로 눌러 성형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결과 독일은 1차 대전 이후 수년간 점점 더 큰 프레스를 건설하여 마그네슘과 알루미늄의 대형 단조품과 압출품을 만들었다. 단조의 경우 7,000톤 프레스를 시작으로 16,500톤 프레스 3기, 이어 33,000톤 프레스를 세웠고, 더 큰 55,000톤 프레스도 계획 중이었다. 압출 프레스도 비슷하게 발전했다. 2차 대전 말까지 독일은 12,000톤 압출 프레스 4기를 다양한 건설 단계에 올려놓았고, 25,000톤 프레스를 도면 단계에 두고 있었다. (여기서 ‘톤’은 프레스의 중량이 아니라 압력 용량을 뜻한다. 즉 7,000톤 프레스는 7,000톤에 해당하는 힘을 가할 수 있다.)
미국이 독일의 대형 프레스 역량을 인지한 것은 1942년만큼 이른 시점이었다. 격추된 독일 항공기의 잔해를 조사하자 미국에서 생산 가능한 것보다 훨씬 큰 단조품이 발견된 것이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 매사추세츠의 와이먼-고든(Wyman-Gordon) 공장에 18,000톤 대형 단조 프레스 건설을 시작했으나, 완공은 1946년에야 이뤄졌다.
대형 항공기 단조품(왼쪽) vs 여러 개의 작은 부품으로 조립한 동일 구조물, 출처: USAF
독일의 항복 이후, 미국과 소련은 대형 프레스 역량과 로켓 과학자들을 나눠 가졌다. 미국은 독일 프레스 4기를 분해해 본토로 운반했고, 소련은 33,000톤 프레스와 55,000톤 프레스 설계도, 그리고 다수의 독일 금속공학 전문가들을 확보했다.
1940년대 후반, 여러 요인이 미국이 자체적인 대형 프레스 시리즈를 구축하도록 밀어붙였다. 비행 성능의 급속한 향상은 더 가볍고 강한 항공기 부품을 요구했다. 독일은 매우 큰 항공기 단조품과 압출품을 사용하면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고, 미국은 자체 18,000톤 프레스를 몇 년간 운용한 경험도 있었다. 소련은 독일 프레스 중 가장 큰 것을 가져갔고, 자체적으로 더 많은 프레스를 만들고 있을 것으로 여겨져 미국이 항공기 제조 역량에서 뒤처질 위험이 있었다.
공군은 당시 생산 중이던 17개 항공기를 조사하고 여러 항공기 제조사를 설문한 뒤, 매우 큰 단조·압출 프레스를 구축하면 큰 이익이 있을 것이라 결론지었다. 1950년 국방부는 대형 프레스 17기(다이 단조 9기, 압출 8기) 건설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예상 비용(프레스와 지원 설비 포함)은 3억 8,900만 달러였다. 이후 규모가 축소되어 10기로 줄었고(압출 4기, 단조 6기. 여기에 18,000톤 와이먼-고든 프레스와 독일에서 가져온 4기 제외), 최종적으로 2억 3,900만 달러(2024년 달러 기준 28억 달러)가 들었다.
프로그램은 국방부가 자금을 대고 공군이 관리했지만, 프레스 자체는 민간 기업에 임대되어 운영되었다(당시에는 논란이 된 선택이었다). 매우 매력적인 임대료 조건 대신, 기업들은 프레스 유지보수와 운영에 드는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정부는 프레스 운영 매출의 4~5%를 받았다.
이런 방식에는 정부의 ‘영업’이 필요했다. 민간기업이 참여하도록 설득해야 했고, 프레스가 유지보수 비용만 잡아먹는 구멍이 아니라 수익원이 될 것임을 납득시켜야 했다. 항공기 설계자들도 프레스가 실제로 사용 가능하다는 점을 확신해야 했고, 프레스의 장점을 활용하도록 부품을 설계해야 했다(역사적으로 항공기 설계자들은 소수의 시설에서만 만들 수 있는 부품을 설계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프레스 건설은 1952년에 시작되었고, 그 규모는 실로 장대했다. 가장 큰 5만 톤 단조 프레스는 괴물 같은 존재였다. 10층짜리 건물만 했고, 전함 전체를 들어 올릴 만큼의 힘을 가할 수 있었다. 3만 5천 톤 단조 프레스도 크게 뒤지지 않았다. 1만 2천 톤 압출 프레스조차 길이 120피트에, 부품 높이는 성인 키의 두 배였고, 당시 미국 최대 압출 프레스의 두 배가 넘는 용량을 가졌다.
로위(Loewy) 1만 2천 톤 압출 프레스, 출처: Steel.
1만 2천 톤 롬바드(Lombard) 압출 프레스용 주강 부품, 출처: Steel
대부분의 단조 프레스는 지하에 설치되어야 했고, 두께 13피트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100피트 깊이의 거대한 구덩이가 필요했다. 단조·압출 프레스 모두 200톤 크로스빔, 90톤 실린더 지지대, 145톤 타이로드 같은 거대한 철강 부품들로 구성되었는데, 이것들은 인류가 제작한 금속 부품 가운데서도 손꼽히게 큰 것들이었다. 부품이 너무 커서 이를 다루기 위한 특별한 제조·운송 방식이 고안되었다. 단조 프레스의 길이 108피트 타이로드를 제작하려면 특수 노를 지어야 했고, 이를 옮기려면 여러 대의 크레인이 필요했다. 일부 프레스 부품은 철도 차량 한 대가 감당할 수 있는 중량 한도를 초과해 여러 대의 화차가 한꺼번에 실어 나르기도 했다. 부품은 베들레헴 스틸 같은 미국 업체가 생산했을 뿐 아니라, 영국·스코틀랜드·프랑스·일본 등 전 세계에서 조달되었다.
로위 5만 톤 단조 프레스의 강철 기둥 일부로 단조될 275톤 강괴.
거대한 프레스만큼이나 방대한 지원 인프라도 필요했다. 프레스의 유압 시스템에는 수천 갤런 급의 물탱크와 최대 7,000psi까지 물을 가압할 수 있는 복잡한 펌핑 시스템이 필요했다. 거대한 새 노를 지어야 했고, 톱과 신장 장치 같은 더 크고 새로운 공구도 갖춰야 했다. 제련소는 대형 프레스에 투입할 알루미늄 같은 금속의 대형 잉고트를 생산하는 법을 찾아야 했다. 알코아는 5만 톤·3만 5천 톤 단조 프레스를 설치하기 위해 클리블랜드에 50만 제곱피트 규모의 공장을 신축했다.
110인치 선반에서 메스타(Mesta) 5만 톤 프레스용 강철 기둥을 선삭 가공하는 모습.
1954년까지 첫 번째 대형 프레스들이 가동에 들어갔고, 1956년에는 모두 완공되었다. 프레스들은 곧바로 실력을 증명하며 항공기 부품 수와 제조비를 크게 줄였다. 한 사례에서는 4개의 단조품이 272개의 개별 부품과 2,700개의 리벳으로 이뤄진 조립체를 대체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9개의 대형 압출품이 81개의 작은 부품을 대체하고 9,000개가 넘는 패스너를 없애 부품 비용을 30%, 중량을 6% 줄였다. 새 프레스는 속도도 빨라 생산 효율은 더욱 올라갔다.
헤비 프레스를 사용해 B-52 부품의 가공량을 줄이는 사례, 출처: American Machinist.
프레스는 부품과 패스너뿐 아니라 기계 가공 시간도 줄였다. 보통 단조품이나 압출품은 프레스에서 나온 직후에는 정밀도가 완벽하지 않아 최종 치수로 깎아내는 가공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아주 큰 부품은 큰 판재나 빌렛에서 깎아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헤비 프레스가 가공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지만, 얇고 복잡한 형상을 최종 형상에 가깝게 빚어낼 수 있어 가공 시간은 크게 줄었다. 한 사례에서는 초기 중량 1,600파운드에서 1,200파운드 이상을 가공으로 제거하는 데 1만 8천 달러가 들던 부품을, 초기 중량 321파운드에 가공비 500달러만 드는 부품으로 대체했다. 또 다른 부품은 제거해야 할 재료가 23파운드에서 2파운드로 줄었다.
이러한 절감은 항공기 총제작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콘베어 F-102A의 절감액은 2만 달러로, 기체 가격의 약 1.6%였다. 중폭격기에서는 절감률이 더 커 총비용의 5~1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B-52 한 기종에서의 절감액만으로도 헤비 프레스 프로그램 전체 비용을 넘어선다는 추정도 있었다. 1960년대에 이르면 헤비 프레스는 제조비 절감만으로 정부에 5억 달러의 이익을 안겨준 것으로 평가되었다.
헤비 프레스로 제작 가능한 항공기 부품, 출처: Aviation Week.
이 새로운 프레스 역량의 수혜자는 항공기만이 아니었다. 프레스에서 만든 부품은 탄도미사일, 원자력 잠수함, 육군의 장갑차에도 쓰였다. 머큐리 우주 캡슐의 베릴륨 열차폐판과 새턴 V 로켓을 발사대에 고정하는 거대한 알루미늄 ‘앵커’도 단조 프레스로 제작되었다. 1956년에는 상업용 항공기 부품 생산에도 처음 사용되었고, 1960년대에는 흔한 일이 되었다. 보잉 747의 랜딩기어를 지지하는 4,000파운드짜리 티타늄 빔은 당시까지 생산된 최대 규모의 티타늄 단조품이었다.
헤비 프레스의 광범위한 용도는 사용 소재의 범위 확장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처음에 프레스는 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을 주로 다루도록 설계되었지만, 1960년대에 이르면 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은 물론 강, 티타늄, 니켈, 구리, 콜럼븀(니오븀), 베릴륨 등 다양한 금속을 눌러 성형했다.
헤비 프레스는 “산업 역사상 금속 가공에서 가장 빠르고 광범위한 진보”이자, 항공기 제조에서 가장 큰 도약으로 묘사되었다. 2000년대 초에 이르면, 헤비 프레스에서 나온 부품이 미군의 모든 현역 항공기와 에어버스·보잉이 만든 모든 항공기에 들어갔다. 두 대의 5만 톤 단조 프레스는 2018년 더 큰 6만 톤 프레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 최대의 폐쇄 다이 단조 프레스였다.
헤비 프레스 프로그램은 군사기술의 파급효과와, 정부의 기술 역량 투자로부터 나올 수 있는 잠재적 수익의 전형적 사례다. 프레스는 초음속 항공기를 위해 더 가볍고 강한 부품을 만들려는 군사적 목적에서 건설되었지만, 일단 설치되고 나니 우주선부터 전력설비, 상업용 항공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유용했다. 미국은 70년이 넘도록 이 프레스의 혜택을 누려왔고, 상업용 항공기 제조에서의 미국의 성공도 적어도 일부는 이 프레스의 존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현대 미국 항공우주 산업 전체가 헤비 프레스에 빚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헤비 프레스 프로그램은 또한 기술 진보에서 제조 혁신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프레스가 가능케 한 제조를 고려한 설계(DFM) 최적화—많은 수의 부품과 패스너를 더 적은 수의 대형 부품으로 대체하고, 가공 시간을 줄이는 방식—는 제조비를 낮출 뿐 아니라, 어떤 기술이 상업적으로 성립 가능한지에 대한 경제적 계산 자체를 바꿔 후속 개발을 촉진한다. 헤비 프레스는 강하고 정밀하며 경량인 항공기 부품을 다른 제조법보다 더 저렴하게 만들 수 있게 해,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것들을 가능하게 했다. 1964년 공군의 공식 성명서는 “헤비 프레스 프로그램의 주요 성과를 열거하는 것은 곧 우리 현대 첨단 항공기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 하며, 항공기 웨트 윙(날개 내부에 연료를 저장하는 구조) 같은 기술을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하게 만든 공을 헤비 프레스에 돌린다.1
오늘날 이와 명확히 맞닿아 있는 사례는 테슬라다. 테슬라는 자동차 차체의 일부를 수십, 수백 개의 작은 부품 대신 대형 알루미늄 주조로 대체해 자동차 제조에 유사한 혁신을 일으켰다. 헤비 프레스와 마찬가지로, 대형 주조를 도입하려면 전례 없는 규모의 “기가 캐스팅(Giga-casting)” 기계를 구축해야 했다. 테슬라는 대형 주조를 채택한 첫 자동차 제조사였지만, 절감 효과가 워낙 커—차체 일부 비용을 20~40% 줄인 것으로 추정—특히중국업체들을 중심으로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도입하고 있다. 대형·복잡 주조는 비용 절감뿐 아니라 우수한 전기차 충전 성능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도 거론된다.
테슬라의 대형 주조 경험은, 단 한 번의 공정으로 크고 복잡한 부품을 만드는 방식으로 기술을 더 앞으로 밀어붙일 기회가 여전히 있음을 시사한다. 대형 프레스조차 아직 모든 가능성을 소진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폐쇄 다이 단조 프레스의 최대 용량은 현재 8만 톤(당연하게도 중국)까지 올라갔지만, 이미 1950년대에 전문가들은 20만 톤급 프레스가 항공기 제조에 유용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SR-71 개발 경험을 통해 켈리 존슨은 미국에 25만 톤 프레스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1980년대에는 육군이 최대 20만 톤급 프레스의 유용성을 연구했다. 그러나 그런 프레스는 미국은 물론 다른 어디에서도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최근의 경험은 미국이 더 이상 이런 기회를 활용할 의지나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런 규모의 기계를 만드는 노하우는 상당 부분 사라졌거나 해외로 이전되었다. 초기 헤비 프레스는 로위 하이드로프레스(Loewy Hydropress)와 메스타(Mesta) 같은 미국 기업들이 만들었지만, 2000년대 초 알코아의 5만 톤 프레스를 개수할 때 교체 부품은 독일의 SMS에서 왔고, 이 회사가 6만 톤 단조 프레스도 제작했다. 그리고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이 자사 생산라인에서 대형 기가 캐스팅 기계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그 기계들 자체는 중국 또는 중국계 기업(IDRA 등)이 압도적으로 만든다.
기술 진보란 곧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것을 만드는 일이며, 이는 종종 제조 기술의 경계를 앞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뜻한다. 이 일을 소홀히 하면, 그 일을 해내는 이들에게 뒤처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항공기를 알루미늄으로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홀-에루(Hall–Héroult) 공정의 발명, 즉 알루미늄 생산 비용을 극적으로 낮춘 돌파구 덕분에 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