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해체 주장과 유럽의 구조적 문제, 통합과 경쟁력 회복을 둘러싼 논의를 다루는 글
2025년 12월 9일 작성
일론 머스크는 X 플랫폼에 대한 EU의 벌금 부과에 몹시 화가 나서, 지금 트윗 폭주를 하며 불평을 쏟아내고 있다. 그 중 하나로 그는 EU 전체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요즘 유럽 정치에 대해 의견을 거침없이 내는 부유한 미국인으로는 그가 처음도 아니다. 나는 이런 외부의 관심이 달갑지는 않지만, 주목할 가치가 있고 신경 써야 할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EU를 부수고 갈가리 찢어야 한다는 생각이 미국에서만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쪽에서도 인기가 있다는 점이 그렇다. 이 점이 나를 무척 우려하게 만든다.
이쪽에도 분명 고쳐야 할 것들이 한참 쌓여 있다. 나는 이미 우리 문화에 대해 불평한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앞에 놓인 도전 과제는 정치인이나 관료에게서 나오지 않고, 우리, 즉 사람들 자신에게서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럽인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미래에 대해서도 미국인들에 비해 상당히 비관적이다. 게다가 유럽인들은 수년간 죄책감을 많이 느끼도록 훈련되어 왔고, 그 탓에 스스로의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는 데 주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유럽에는 규제되지 않은 이민에 대한 수년간의 상당한 지지라든가, 탈성장(degrowth) 개념에 대한 건강하지 못한 집착 같은, 온갖 흥미로운 반(反)문화적 움직임이 나타났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 둘 모두 예전만큼 인기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도덕적으로 보자면 이런 것들도 방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유럽이 경쟁력을 잃게 만들었고, 사회적 응집력도 약화시켰다. 특히 강한 복지 국가와 높은 세금의 조합은 지난 10년간 우리가 경험한 유형의 이민과는 상극이다. 즉, 전쟁을 피해 탈출한, 대체로 저숙련 노동자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말이다. 이는 곧, 특정 계층의 이민자들은 아주 오랜 기간, 어쩌면 영원히 순수한 세입 측면에서는 마이너스가 될 공산이 크다는 뜻이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게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 고민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조차도 우리의 진짜 문제가 놓인 곳은 아니다. 그리고 적어도 우리가 추정하듯이 ‘표현의 자유가 부족하다’는 데서 비롯된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이 주제에 대한 논의는 너무 미묘해서, 뭐라 단정하기가 어리석을 정도다. 이 사회 역시 표현의 자유에 일정한 한계를 두고자 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지금 “각성(woke) 이데올로기”에 대한 상당한 반작용을 볼 수 있는데, 그 반작용의 많은 부분이 각종 다른 경로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데 관여하고 있다.
미국은 지금 유럽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설교를 하려 들지 모르지만, 사실 그들이 우리를 가르쳐야 할 것은 우리의 경제 모델이다. 유럽에는 파편화가 너무 심하고, 혁신을 해치는 엄청나게 엄격한 규제, 비효율적인 자본 시장, 그리고 미국과 중국에 대한 막대한 의존도가 있다. 미국이 우리를 자국의 클라우드 제공업체에서 잘라내 버리면, 이쪽에서는 제대로 돌아가는 게 거의 없을 것이다. 중국이 우리에게 칩을 보내는 일을 중단한다면, 우리 또한 곤경에 빠질 것이다(우리는 이를 이미 목격했다).
이건 뼈아픈 일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역사적으로 정보의 자유, 주(州) 단위의 직접 민주주의, 그리고 상당히 낮은 부패 수준의 훌륭한 본보기였기 때문이다. 이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 적어도 일관적으로는 – 그리 잘 해내지 못하고 있고, 그 점에서라면 우리가 설교를 들어야 할 위치다. 근본적으로, 미국식 자본주의 접근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 중 거의 최상급에 가깝다. 다른 접근 방식이 더 나은 결과를 냈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제 와서는 그에 유리한 증거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미국에서의 시민적 자유의 점진적인 약화로 인해, 많은 유럽인들이 미국이 하는 모든 일을 나쁘다고 여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중대한 실수다.
중국과 미국 모두, 우리가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고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유럽이 지금까지 이 의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와 과세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는 좋은 전략이 아니다. 해결책은 우리가 다시 경쟁력을 갖추어, 그 세수(稅收)를 현지 기업들에게 돌릴 수 있게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 디지털서비스법(DSA)이 좋은 예다. 우리는 애플을 벌주고 그들의 플랫폼을 개방하도록 강제하고 있지만, 그 틈을 활용할 수 있는 회사는 유럽에 없다.
내 블로그를 읽어온 이라면, 유럽에서 ‘외국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모호한지 내가 한 번 적었던 생각들을 기억할지 모른다. 실상 유럽은 EU가 작동해 온 방식 덕분에 오랫동안 깊이 통합되어 왔지만, 여전히 미국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나는 이것이 여전히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언어가 과제라고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들 간의 견제가 여전히 치열하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더 큰 상점들로부터 자국의 소매 상인들을 지키고 싶어 하고, 슬로베니아에서 온 더 저렴한 목수들로부터 자국의 목수들을 보호하고 싶어 한다. 오스트리아를 다른 어떤 EU 회원국으로 바꿔 넣더라도, 같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U가 완벽하지는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들이 지금까지 보여 준 행동양식을 보았을 때, EU를 폐지한다고 해서 어떤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EU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다시 국경 분쟁의 불씨를 데우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영국이 탈퇴한 뒤 북아일랜드에서 비슷한 문제들이 불거지는 것을 봤다.
게다가 우리는 너무 많은 관료주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수많은 사회 시스템, 그리고 휘청이는 연금 제도를 떠받치기 위한 막대한 정부 부채를 안고 있다. 우리는 어느 블록보다도 성장이 필요하지만, 실제로 그 성장을 이룰 확률은 매우 낮다.
EU의 구조를 고려하면, EU는 또한 회원국들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실패에 대한 공적(攻擊)의 대상 역할까지 하고 있다. 유럽 관료들이 이민자를 받아들이라고, 채팅 검열(chat control)을 도입하라고, 혹은 쿠키 배너나 플라스틱 뚜껑 부착 의무를 시행하라고 유럽인들에게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 이상의 회원국에서 비롯된 이니셔티브다. 그러나 결국 비난은 언제나 EU가 뒤집어쓴다. 왜냐하면, 이러한 조치들에 찬성 표를 던졌던 현지 정치인들조차 손쉽게 “브뤼셀”을 가리키며 문제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각난 유럽은 내게 전혀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중국과 미국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이 가지고 있지만 유럽이 가지지 못한 것은 강한 국가 정체성이다. 두 나라는 모두, 힘이란 통합에서 나온다는 점을 인식해 왔다. 특히 중국은 어떠한 형태의 지역주의라도 이를 어떻게든 뿌리 뽑으려 하고 있다. 미국은 국기에 대한 맹세, 남북전쟁, 교육부(Department of Education)를 통한 학교 내 공통 서사 주입, 그리고 과거 전국 곳곳에 우체국과 인프라를 깔아 두는 방식으로 이런 통합을 이뤄냈다. 유럽에는 그런 것이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유럽인들 스스로도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다시 작은 국가들로 되돌아가도 괜찮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다.
유럽이 경쟁력을 갖추기를 원한다면, 통합된 초강대국이 되지 않고는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지금 유럽에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거나, 또 일어나야 한다는 믿음 자체가 거의 없다. 다른 초강대국들 역시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원할 리 없다.
내가 뭔가 건설적인 제안을 해야 한다면 이렇다. 유럽은 단일 시장이면서 동시에 27개의 서로 다른 경제 정책을 가진 27개 국가일 수 있다고, 그만큼의 판타지를 버려야 한다. 이 어정쩡한 절충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 우리는 유로존이라는 공통 통화를 갖고 있지만, 공통의 재정 정책은 없다. 우리는 이동의 자유를 갖고 있지만, 사회 시스템은 제각각이다. 우리는 공통 규정을 두고 있지만, 집행은 쪼개져 있다. 노동법 27개, 법체계 27개, 세법 27개, 복잡한 부가가치세 규칙 등등.
작년 발표된 드라기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들 중 많은 부분을 아주 분명히 짚어냈다. 유럽에는 기술과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물자뿐 아니라 서비스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단일 시장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을 규모 있게 자금 조달할 수 있는 자본 시장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관심 있게 지켜보던 사람들에게는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여기 불편한 진실이 있다. 이런 일들은 유럽인들이 ‘덜’이 아니라, ‘더’한 통합이 해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치적 동력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모든 국가는 EU의 혜택은 누리고 싶어 하면서, 의무는 지기 싫어한다. 모든 국가는 타국의 시장에 접근하면서, 자국 산업은 보호하길 원한다.
더 깊은 통합에 반대하는 논거 가운데 하나는, 유럽이 서로 별 상관없어 보이는 쟁점들에 엮여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EU는 비민주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그 비판 중 일부는 내게는 영 맞지 않아 보인다. 물론 나도 EU에서 더 많은 민주성을 환영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시스템이 실제로 비민주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채팅 검열 같은 사례를 보자. 이 제도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몇몇 회원국과 그 나라의 선출된 대표들이 이를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 앞에 가로놓인 가장 큰 장벽은, 회원국과 그 국민들이 실제로는 EU를 더 강화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민주성의 결여”는 매우 의도된 것이며, 권력을 국가 차원에 남겨두고자 할 때 필연적으로 나오는 결과물이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머스크의 주장대로 EU는 폐지되어야 할까? 나는 이것이 유럽 역사에 대해 거의 이해가 없고 배우려는 의지도 없는 사람이 내놓은, 극도로 진지하지 못한 제안이라고 본다. EU는, 견제받지 않는 민족주의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는 교훈 속에서 생겨났다. 또한 소국들이 개별적으로 협상에 나서는 것보다, 블록으로 함께 나서는 편이 훨씬 큰 영향력을 가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존재한다.
나는 또, 유럽의 정치를 외국의 이해관계가 좌우해야 한다는 발상에도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인도, 미국인도, 유럽 정치에 그토록 큰 이해를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여기 살지 않고, 여기 사는 것은 우리다.
EU가 없으면 유럽이 더 “자유로워질”까? 아마도 어떤 협소한 규제 측면에서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유럽은 더 약해지고, 더 분열되며, 더 큰 강대국들 – 미국을 포함해서 – 이 벌이는 조종과 압력에 더 취약해질 것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의 테크 재벌들이 유럽 시장이 제공하는 개방성 덕을 톡톡히 보면서도 EU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기업은 유럽 시장에서 엄청난 가치를 빨아들이고 있으며, 이는 현지 기업들이 누리는 것보다도 더 크다.
진짜 논점은 유럽이 규제를 줄여야 하느냐, 자유를 늘려야 하느냐가 아니다. 그것은 유럽인인 우리가, 우리가 시작한 이 프로젝트를 정말로 완수할 정치적 의지를 찾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진짜 연방 – 실질적인 재정 이전 메커니즘, 공동 방위 정책, 통합된 외교 정책을 갖춘 체제 – 이라면 초강대국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은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절충물이며, 머스크와 다른 올리가르히들이 행사하는 바로 그 종류의 압력에 우리를 취약하게 놔두는 시스템일 뿐이다.
유럽은 요란한 비판자들이 주장하듯 그런 방식으로 “수리”될 필요는 없다. 미국처럼 변신할 필요도 없고, 사회 모델을 통째로 버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지금 유럽이 해야 할 일은, 스스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영원한 애매함 상태는 지속 불가능하다.
또한 유럽은 자신의 가치를 잃어버려서도 안 된다. 유럽인들은 더 이상 EU가 제공하는 인권에 그렇게까지 뜨겁게 열광하지 않을지 모른다. 더 이상 예전만큼의 이민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유럽인들은,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노동력의 이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그 안에는 해외에서 오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불행하게도, 지난 10년의 전쟁들은 이민 담론 전체를 뒤덮어 버렸고, 그로 인해 포퓰리스트들이 번성할 토양이 만들어졌다. 숙련된 기술 이민자조차도 다른 이들과 똑같은 장벽에 부딪히고 있으며, 그 결과 유럽으로 오는 매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계속 이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 이는 역사적으로 유럽이 선호해 온 접근법이기도 하다. 영감을 주는 방식은 아니지만, 인터넷이 말하듯 대재앙이 닥쳐올 방식도 아니다.
낙관할 이유가 있을까? 충분히 긴 시간 축에서 보면 그래프는 결국 위를 향한다. 우리는 지금 힘든 구간을 지나고 있을지 몰라도, 구조적으로 보면 이 시스템 전체는 여전히 꽤 탄탄하다. 그리고 세상의 나머지가 순항 중인 것도 아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역시 각자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것이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최소한의 맥락은 제공한다. 상황이 아무리 암울하게 느껴지더라도, 도전을 안고 있는 건 우리만이 아니며, 우리의 도전은 우리만의 고유한 것이고, 우리는 그것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한 방법이든, 다른 방법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