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물물교환: 협상의 시초적 형태

ko생성일: 2025. 6. 24.갱신일: 2025. 7. 4.

벙어리 물물교환(무언 교환)은 말 없는 협상 방식으로, 완전한 불신과 적대감, 비대칭적 권력관계, 문화적 차이, 극한의 위험 속에서도 실질적으로 거래가 성사됐던 독특한 협상법이다. 본문에서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이 과정의 구조와 지속 요인, 협상의 본질에 대해 고찰한다.

벙어리 물물교환: 협상의 시초적 형태

가이 올리비에 포어(Guy Olivier Faure)

  • 상하이 유럽경영대(CEIBS) 초빙교수. 헤이그 Clingendael 국제관계연구소 국제협상프로세스(PIN) 소장. 연락처: go.faure@gmail.com

초록

협상은 소통을 필요로 하지만, 반드시 언어적 교환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다양한 상황에서, 완전한 불신·적대감·권력불균형, 문화적 차이, 거래장소에의 극한 접근성 등 수많은 위험 요소 속에서도, 일부 당사자들은 '벙어리 물물교환'(dumb barter)이라 불리는 거래 방식을 활용하여 거래에 도달했다. 이 방식은 독특한 논리와 패러다임을 지닌다. 종종 '무언 교역'(silent trade)이라 불리며, 특히 서아프리카 등지에서는 2000여 년 넘게 관찰되어온 가장 오래된 형태의 교역 협상법이다. 오늘날에도 극소수 지역에서 실천된다. 이 기묘하지만 실재했던 행위는 협상 이론가들에게 협상의 근본적 본질에 관한 통찰을 제공한다.


벙어리 물물교환: 협상 패러다임

협상은 소통을 요하나, 반드시 음성 교환일 필요는 없다. 역사·인류학적으로 이를 입증하는 수많은 사례가 있다. 문화적, 물리적 장벽이 높고 상호 불신·적대가 극심한 상황에서도 거래가 성립할 수 있었다. 바로 '벙어리 물물교환'이다. 이런 거래가 어떻게 가능했으며, 이를 통해 협상의 본질과 교역 시스템의 장기적 안정 유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극한의 비우호적 환경

서아프리카, 곧 사헬/수단 지역은 금이 풍부하나 소금은 부족했고, 반대로 남부 모로코(타필레트·시길마사 지역)의 상인들은 타가자에서 소금을 채취해 사헬·수단까지 이송했다. 교역로는 두 달 이상 소요되는 험난한 사막길이었고 공격 위험조차 컸다. 18세기 말까지 2000년 넘게 이런 교역이 유지되었다. 바로 이 과정에서 '벙어리 물물교환'이 활용됐다.


기본 과정

벙어리 물물교환은 당사자의 직접 접촉 없이 이루어진다. 한 그룹이 중립 지대(주로 경계선)에 물품을 내려놓고 떠나면, 나중에 다른 그룹이 와서 그 옆에 교환 희망물품을 놓고 떠난다. 최초의 그룹이 돌아와 제안이 만족스러우면 교환품을 가져가고, 아니라면 그대로 두었다가 추가·감액이 이뤄질 때까지 반복한다.

즉, 대면·언어 소통 없이 일련의 '보이지 않는' 신호를 주고받으며 교환 가치를 조율한다. 신뢰 없음, 상호 사기 위험, 폭력 가능성 등으로 환경은 매우 적대적이지만, 거래의 필요 때문에 특별한 '중립' 공간이 마련되고 시스템은 유지된다.

이런 거래 방식은 야만인 또는 적대적 부족과의 거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납치 위협, 노예화, 언어 장벽, 불신 등으로 직접 접촉은 피해야 했다. 이는 초기 시장 중립성의 형태로 볼 수도 있다.


역사적 변종

역사적으로, 벙어리 물물교환은 최소 2500년 전부터 행해졌다. 헤로도토스 등 그리스, 엘 야쿠트, 이븐 엘 오와르디, 엘 이드리시, 엘 마수드 등 수많은 중세 아랍·베르베르, 유럽의 기록에 구체적 묘사가 남아 있다. 주요 절차는 거의 동일하다. 제3자(중개인)가 개입하는 변종도 존재한다. 후대로 갈수록 현장 통제, 시스템 유지 관리, 대가 지불(세금 등)이 추가된다.


과정 관리: 긍정합 게임의 조건

서로 모르는 집단, 직접 접촉 없는 물리적 거리, 언어장벽- 이런 극도의 불확실성과 위험 속에서도 교환은 2000년 지속되었다. 이는 강한 동기(아랍인은 소금을, 아프리카인은 금을 상대적으로 쉽게 취득), 작은 분량 시범거래(위험 축소), 물리적 분리(피해 위험 감소), 관습화된 의례 등이 전제가 됐다. 모든 위험이 완전히 상쇄되진 않지만, 반복적 경험을 통한 행동예측·암묵적 규칙 준수로 시스템은 유지됐다.

  • '사기가 아닌 자기이익 극대화'가 근본 동기였으며, 신뢰 구축보다는 불신 완화와 반복이 안정성을 이끌었다.

위험 관리

벙어리 물물교환은 대체로 적대적·서로 통하지 않는 집단 간에만 행해졌다. 적대관계가 완화되면 직접 거래로 전환했다. "침묵"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언어소통 불가 및 대면 회피의 결과였다. 시작 계기는 우연(짐 벗겨진 낙타 옆에 내놓은 소금 → 그곳에 금이 나타남) 또는 신뢰받는 제3자의 중재였을 수 있다.

거래 시스템의 정상성 유지, 규칙 위반에 대한 응징(왕이나 현지 지배자의 강제력 행사), 교환과정의 의례화, 정보 유출 차단(금광 위치 비공개), 대안적 교역자 부재로 인한 상호신뢰 유도 등이 핵심이다.


비대칭 권력 관리

명목상 아랍 상인이 무장·경험 면에서 우월했으나, 실제론 상대의 강함에 대한 인식/명성만으로 균형이 유지되었다. 비대칭 권력 하에서도, 벙어리 물물교환은 강자의 일방적 이익 취득을 막는 협상의 장치가 되었다.


소통 관리

표면적으로 완전한 침묵이지만, 북소리·연기·물리적 거리 등 다양한 비언어 신호가 활용됐다. 거래의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언어적 소통은 끝내 발달하지 않았는데, 상대적 약자(아프리카 부족)가 노출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긴 여정과 계절적 위험 회피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대안·협상범위

실질적으로, 양측 모두 대안이 거의 없었다. 경쟁 방지(사회적 통제, 과정 비공개, 절차의식), 제3자 혹은 상호알지 못하는 사용자 간 거래에선 순차적 협상만 가능했다.

가격 범위는 기록이 희박하나, 당시 교환비율은 수요공급에 따라 2배까지 달라졌다고 한다. 합의는 과거 거래 경험과 그 해의 특별 변수(공격, 금 채취량 변화 등)에 따라 달라졌을 것이다.


가치 평가 과정

공정성이란 가치는, 문화 내/집단 내에서 상대적, 주관적으로 평가된다. 소금·금 모두 현실적으로 생산 및 굴착의 난이도, 교환대상 집단의 절박성, 운송노력 등에 따라 가치가 매겨졌다. 그 어떤 시장가격도 없었으며, 정보비대칭과 제한된 반복 경험만이 기준이 됐다.


교역의 종언

벙어리 물물교환은 19세기 초까지 잔존했다. 금광의 고갈, 아프리카 외부 금의 등장 등으로 쇠퇴하게 된다. 교환장소의 중립성–즉 시장의 중립성–이 유지되었기에 오랜 지속이 가능했다.

오늘날 납치 협상 등 겉으로 유사한 '분리 협상'이 있으나, 언어·문화·교환대상(인질 등)과 권력구조 등 차이로 본질적으로 다르다. 벙어리 물물교환은 양측 모두의 실질적 이득이 발생하는 긍정합 게임이었으나, 현대의 납치협상은 피해자만 남는다.


벙어리 물물교환의 확장

이 방식은 아프리카 내(에티오피아, 콩고 분지), 인도양 도서, 동남아, 중국, 남북아메리카, 북극권(라플란드), 네팔 등 수많은 고립 소규모 집단에서 수천 년간 관찰된다. 기본적인 과정과 논리는 유사하다.


협상의 본질에 대하여

벙어리 물물교환은 협상 자체의 본질을 비춰준다. 최소화된 소통, 자기이익 대 불신, 의례와 예측성, 맥락의 무력화, 혼합 동기(이익+위험), 상호 조정과 수렴의 반복적 과정–이 모든 것이 협상을 협상답게 만든다. 핵심은 일종의 '상당히 수렴된 마음의 모델(reasonably convergent mental models)'이 공동체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주석

  • 이 글의 초고에 유익한 조언을 준 딘 프루이트, 윌리엄 자트만에게 감사를 표함.
  • 벙어리 물물교환과 '신뢰 게임'은 침묵의 교환이라는 점에서 유사. 그러나 반복성과 응징/보상 가능성으로 인해 효율이 보장되는 점에서 다름.
  • 같은 구조의 다른 "금-소금 거래처"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 못함(예: Wangara—현지인들이 광산 위치 철저히 비밀 유지).

참고문헌

(원문 참고문헌 목록 전체 번역 생략. 주요 저자 및 저작 연도 순서, 필요시 국문명 표기.)

© 2011 President and Fellows of Harvard College. 본 논문은 Creative Commons Attribution-NonCommercial 4.0 International License에 따라 비영리적 용도에 한해 자유롭게 활용 가능하다.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