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폭탄 해체는 세상에서 가장 최악의 직업이다

ko생성일: 2025. 5. 30.갱신일: 2025. 6. 14.

1952년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미 정부가 원자폭탄 해체라는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행한 이야기. 이 극한의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원자폭탄 해체는 세상에서 가장 최악의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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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퍼레이션 텀블러-스내퍼(1952년)의 타워 샷 고속 촬영 사진.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by 스티브 와인츠(원문)

1952년 봄, 미국 정부는 오퍼레이션 텀블러-스내퍼의 일환으로 네바다 실험장에서 전술 핵무기 실험을 진행했다. 이때는 18개월 사이 세 번째로 실시된 핵실험 연속 시기로, 원자력 개발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5월 13일 새벽 4시, 텀블러-스내퍼 실험용 폭탄 중 하나였던 "Fox"가 폭발 일정이었다. 하지만 정해진 시각이 지나도 하늘에는 핵 화염구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Fox 폭탄은 오작동했다. 유카 플랫 위 300피트(약 91m) 타워 꼭대기 캐빈에 고정된 이 15킬로톤짜리 폭탄은, 여러 방향으로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생명체에 심각한 위험을 안겼다.

누군가는 이 폭탄을 해체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어진 일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 섬세한 작업 중 하나였다 — 정말로.

Fox 실험은 순조롭게 시작됐다. D데이 전날 밤, 원자력위원회의 존 C. 클라크 박사는 폭탄실 문을 철사로 봉인하고, 엔지니어들이 타워 엘리베이터를 철수하는 것을 지켜본 후,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수 킬로미터 떨어진 통제 지점으로 향했다.

미 육군 701기갑보병대대(1기갑사단 소속) 950명과 500여 명의 미군 관측자들은 이 핵실험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기 위해 대기했다.

조지워싱턴대와 존스홉킨스대 심리학자들은 관측자들의 반응을 평가할 준비 중이었다. 701대대 병사들은 현장에서 핵폭발의 섬광, 열, 충격파에 대한 영향을 확인한다는 명목의 실험용 '실험대상'이었다.

카운트다운은 H-시간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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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5월 25일 텀블러-스내퍼 Fox 실험. 사진: nuclearweaponsarchive.org

긴장되는 몇 분 동안, 발사팀과 참호 속 701대대는 폭발을 기다렸다. 전자장비와 배선이 재차 점검되었고, 실험 관리자들은 모두 타워에서 눈을 돌려, 대피하라고 명령했다.

폭탄 책임자였던 클라크는 "장치가 원한다면 한 시간 더 놔두자"며 상황을 관리했다.

그 시간 동안 발사팀은 꼼꼼한 해체 절차와 체크리스트를 정리했다.

클라크는 혼자가 아니었다. EG&G 회사의 전자전문가 허브 그리어와 바니 오키프가 동행했다. 두 사람은 동전을 던져 누가 동행할지 정했고, 오키프가 당첨(혹은 불운)되어 클라크와 같이 폭탄이 있는 캐빈으로 향하게 됐다.

6시 15분, 실험 총괄 그레이브스 박사가 OK를 내렸다. 클라크는 줄, 해체 도구, 해킹쏘(쇠톱)만 챙겨 차량에 올랐다. “이런 일에는 두 배 급여 받아야 해요”라며 경비원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원자력위원회 최고의 장치 조작자였던 클라크는 실제로 당시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자폭탄을 직접 터뜨린 인물이다. 몇 달 전에도 이미 다른 원자폭탄을 해체한 경험이 있었다.

1951년 10월, 버스터-재글 실험의 Shot Sugar가 오작동해, 클라크는 1.2킬로톤 폭탄을 해체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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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V 원자폭탄 외피와 핏 접근 해치. 사진: nuclearweaponsarchive.org

클라크, 오키프, 그리고 불운한 로스앨러모스 물리학자 존 위네케가 Site Four로 이동했다. 혹시나 폭탄이 폭발할 경우를 대비해, 클라크는 눈을 돌리고 차양도 내린 채 이동했다.

300피트 타워 꼭대기에 실탄 급의 원자폭탄이 있는 그 장소로 올라가려면, 이미 엘리베이터가 철수된 터라 오를 수밖에 없었다. 100피트쯤 오르다 드레스 구두가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잠시 쉰 뒤 계속 타워를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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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크는 손수 쇠톱으로 철사 봉인을 잘라내고, 세 사람은 무릎을 구부리고 폭탄 주변을 살폈다. 오키프는 현장 전화로 실험 총괄 그레이브스 박사와 연결해, 실시간 상황을 전달했다. 만일에 일어날 최악의 상황을 기록이라도 남기기 위해서였다.

이 폭탄은 폴로늄-베릴륨 내부 중성자 발동기를 실험 중이었다. 이는 폭발 시점에 중성자를 핵심부에 쏟아부어 핵분열을 시작시키는 장치였다.

클라크는 맨손으로 접근 패널을 풀고, Mark V 폭탄 내부의 배선과 전자장치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위네케가 해체 체크리스트를 읽어주면, 클라크가 피트 시스템, 발동기 등을 차례차례 해체했다.

이제 핵폭발은 불가능하게 됐지만, 폭탄은 여전히 대량 폭약을 내장하고 있어 타워와 작업자들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클라크는 원자 기술자를 추가로 불러 플루토늄 핵심(핏)을 안전하게 제거했다. 이 과정은 비교적 일상적이었다.

초기 미국 원자폭탄은 실험용이든 실전용이든, 핵심부와 폭탄 본체를 분리해 보관했다. 폭탄 외피의 해치로 기술자들이 핵심부를 안전하게 꺼낼 수 있는 구조였다.

인생에서 두 번째로 '세상에서 제일 나쁜 직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클라크는, 동료와 함께 Fox 실험 타워를 내려왔다.

사후 조사 결과, 오작동 원인은 폭탄 회로가 아닌 계측 시스템의 기기 불량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장치가 작동을 멈추며 자동 발사 순서를 무력화시켰다.

12일 뒤인 5월 25일, 클라크는 Fox가 완벽하게 폭발하는 장면을 안전하게 지켜봤다. 병사들은 참호, 장비는 데이터 기록, 심리학자들은 관측자 행동을 잰찰했다.

로버트 칸(콜리어스)에 따르면, "36시간의 근무를 마친 후, 클라크는 세단에 올라 실험장 본부 기숙사로 돌아가, 옷을 벗고 샤워한 뒤, 위스키 한 잔을 따라 마시고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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