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규모가 커질수록 리더가 피드백을 듣고 해석하고 대응하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워지는지, 그리고 이를 전제로 어떤 시스템과 관계 설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룹니다.
경청은 언제나 어렵고, 규모가 커질수록 더 어려워진다.
팀 규모가 5명이나 10명일 때는 피드백이 꽤 쉽다. 사실 이때의 "피드백"은 피드백이라 부르기도 애매하다. 그냥 _대화_일 뿐이다. 팀원들을 전부 직접 뽑았을 수도 있다. 그들과 같은 공간에 앉아 있을 수도 있고(아니면 적어도 온라인 상에서는 가까이 붙어 있을 수도 있다). 정기적으로 함께 점심을 먹을 수도 있다. 그들의 아이 이름, 커피 취향, 요즘 읽는 책이 무엇인지도 안다. 그래서 누군가가 당신이 끌고 가는 방향에 대해 우려가 있을 때, 그냥… 말한다.
당신은 그들을 신뢰한다. 그들도 당신을 신뢰한다. 그냥 친구끼리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 사람이 어떤 맥락에서 말하는지 당신은 안다.
20명 정도가 되면 상황이 조금씩 바뀐다. 아마 두 번째 레이어의 리더십이 생기고, 당신 아래 여러 팀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꽤 가깝다. 관계는 여전히 있지만, 예전보다 조금 약해졌을 뿐이다. 누군가가 당신의 전략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때,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의 이력, 관점, 무엇이 그를 동기부여하는지 대략 알고 있다. 맥락이 좀 흐릿해졌을 뿐, 여전히 존재한다.
어느 시점, 대략 100명 안팎에서 땅이 발밑에서 확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당신이 더 이상 모든 사람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알 수가 없다. 하루에 시간이 충분하지도 않고, 솔직히 말해 뇌에 저장할 슬롯도 충분하지 않다.
갑자기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당신의 "리더십"에 대해 아주 날카로운 코멘트를 한다. 그들은 당신에 대해 말하지만, 당신을 알지 못한다. 함께 쌓아온 역사도, 축적된 신뢰도, "우리가 함께 참호 속에 있었지"라는 감각도 없다. 당신의 머릿속엔 이 목소리들을 처리할 수 있는 맥락이 없다.
이 사람들은 누구지? 왜 나한테 소리를 지르는 거지? 평소에는 합리적인 사람들인가, 아니면 뭐든 다 불평하는 사람들인가? 우리가 처한 제약들을 이해하고 있나? 전체 그림을 알고 있나?
기존의 관계가 없으면, 그 모든 말이 공격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그 공격을 무시하거나 피하는 것이다. 더 나쁘게는 방어적으로 굴게 된다. 공격은 우리 안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한다.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이 시점에서 많은 리더들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여전히 피드백에 열려 있고 싶어 한다. 진심이다. 하지만 동시에 물 속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린다. 그래서 무엇에 신경을 써야 하고 무엇은 무시해도 되는지, 자기 직감을 더 의지하기 시작한다. 가끔 그 직감은 맞다. 하지만 자주 그렇듯, 이 직감은 스스로 골라낸 조각들만 보고, 맥락이 사라진 상태에서 기존 편견과 관계에 맞춰 패턴을 끼워 맞추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매니저 레이어가 하나씩 추가되고, 맨 꼭대기까지 레벨이 늘어날수록 당신은 사람들과 점점 더 멀어진다. 이제 당신은 그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고통은 더 이상 당신의 고통이 아니다.
200명 이상이 되었을 때쯤이면, 피드백은 더 이상 실행 가능한 신호가 아니다. 그 정도 규모에서 피드백은 신호가 아니라 소음이 된다. 거대한, 메아리치는 원형극장 안에서 끝도 없이 울리는 의견들. 각자 상대보다 더 크게 말하려 하고, 모두가 이 시스템 전체(사실 모른다), 전체 맥락(사실 모른다), 그리고 당신의 동기(이건 정말 모른다)에 대해 절대적으로 _확신_하고 있는 톤으로 쓰여 있다.
그리고 예전에 많이 들리던 칭찬은? 그건 사라진다. 모두와 깊은 관계가 있을 때는 칭찬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냥 대화의 일부였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당신이 리더로서 당연히 잘 하길 기대한다. 당신의 리더십에 만족한다면, 대부분 조용하다. 자기 일을 하고, 당신을 신뢰하고, 대체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반면 불만족스러운 사람들은? 크고 선명한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꽤 많다.
당신 자리에서 보면, 조직 모든 사람이 항상 모든 것에 화가 난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 그보다는, 비슷한 불만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를 찾아냈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선택 편향과 증폭 효과의 결합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이게 진짜 위기인지, 아니면 슬랙 채널에서 우연히 서로를 찾은 시끄러운 세 사람인지, 당신은 알 수 없다. 더 이상 구분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피드백은 확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확장 효율이 나쁜 존재다. 당신의 신경계는 더욱이 확장되지 않는다.
피드백이 확장되지 않는 이유는, 관계가 확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5명일 때는 팀원 모두와 일대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 20명이 되면, 일부와는 상호작용하지만 전부와는 아니다. 100명이 되면, 여전히 10명이나 15명 정도와는 개인적인 관계가 있을 수 있지만, 나머지와는 거대한 공백이 생긴다. 200명이 되면, 당신의 개인적 관계는 전체 파이 중 아주 작은 조각일 뿐이다.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드는 건, 소음은 점점 커지는데 그 모든 피드백을 처리할 수 있는 채널은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언제든 문은 열려 있습니다"라는 오픈 도어 정책이 있었다면, 이제는 "오피스 아워"만 있다. 그것도 가끔. 정말 바쁘지 않을 때만.
예전에는 전체 회의(All-Hands)에서 자유롭게 질문을 받았다면, 이제는 질문을 미리 받아야만 한다. 아니면 아예 질문 시간이 없다.
슬랙 사용조차 줄어든다. 당신이 뭔가 말을 꺼낼 때마다, 그 발언에 누군가는 화를 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현장의 목소리에 계속 귀 기울이고 있다", "우리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럴 수 없다. 기본적인 수학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는 피드백의 양이, 그걸 처리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압도적으로 초과한다.
먼저, 이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200명과 일일이 개인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하는 걸 멈춰야 한다. 그건 불가능하다. 누구도 할 수 없다. 이 사실을 받아들인 뒤에야, 그 현실에 맞는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만들 수 있다. 당신 개인의 용량을 훨씬 넘어서는 규모에서, 들어오는 피드백을 필터링하고, 분류하고, 모아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냥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에 더 이상 의존할 수 없을 때는, 다음을 구분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구조화된 경청, 실제 인입 프로세스, 그리고 개별적인 이슈마다 반응하는 대신 반복되는 패턴과 주제를 통합해서 보는 방법이 필요하다.
프록시(대리) 관계를 구축하라. 200명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각각 10명을 깊게 알고 있는 사람 10명과는 깊게 알 수 있다. 이미 당신의 리더십 팀과는 강하고 신뢰 기반의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자신의 팀과 그런 관계를 맺으라고 명확히 기대치를 주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묻도록 해야 한다. 이런 체계를 통해 올라오는 피드백에는 맥락이 붙어 있다. 거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작은 규모에서는 신뢰가 직선으로 연결된다. 나는 당신을 알고, 당신은 나를 안다. 더 큰 규모에서는 신뢰가 위임되어야 한다. 나는 나보다 일에 더 가까이 있는 리더들을 신뢰한다. 당신이 그런 리더들에게 피드백를 흡수하고 맥락화할 권한을 의도적으로 부여하지 않으면, 결국 익사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누가 그 말을 했는지, 왜 그 말을 했는지,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
구조화된 피드백 채널을 구축하라. 예를 들어, 까다로운 문제를 파고들기 위한 워킹 그룹(태스크포스)을 만들 수 있다. 문제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당신보다 그 문제를 더 잘 이해하고 있고, 쏟아지는 불만을 실제로 실행 가능한 형태로 바꿀 수 있다. 혹은 피드백을 수집하고 이를 제안으로 정리하는 데에만 초점을 둔 "직원 운영 위원회(employee steering committee)"를 만들 수도 있다. 본질적으로는, 진심으로 신경 쓰는 사람들을 당신을 대신해 듣는 사람으로 임명하고, 피드백의 소음을 관리하도록 맡기는 것이다.
모든 분노 섞인 메시지 뒤에도 결국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잘 아는 사람이 당신에게 피드백을 줄 때, 그게 불편할 수는 있어도 보통 이렇게 말하게 된다. "으… 알겠어요. 얘기해 봅시다." 규모가 커졌을 때도, 비록 상대가 보낸 피드백에는 인간적인 배려가 없더라도, 당신은 인간적으로 응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피드백 루프를 닫아라. 당신이 실제로 피드백을 반영해 무언가를 바꾸고 있다면,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라. 그리고 어떤 피드백에 대해서는 행동하지 않기로 했다면, 적어도 그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만이라도 알려라. 아무도 자신의 목소리가 완전히 무시당했다고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마 이런 생각도 들 것이다. — 아마 이미 했을 수도 있다 — 익명 코멘트 시스템을 만들어 피드백을 수집해야겠다고. 그러지 마라. 함정이다. 익명 피드백은 당신이 받게 되는 피드백 중 맥락이 가장 적기 때문에, 가장 실행 불가능한 피드백이 된다. 게다가 거의 항상 상충되거나 핵심 정보가 빠져 있기 마련이라, 결국 그 익명 피드백을 보낸 사람들 모두가 이전보다 더 무시당하고 더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끔은 틀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나중에 보니 정말 중요한 피드백을 무시했을 수도 있다. 혹은 나중에 보니 그냥 소음이었던 피드백에 과잉 반응했을 수도 있다. 잘못된 판단을 했다면, 그걸 어떻게 수정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유하라.
어느 정도 규모를 넘기면, 조직 안의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좌절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고, 당신은 그 이유를 전혀 모를 수도 있으며, 설사 안다 해도 그걸 고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당신이 못난 리더여서도 아니고, 무심해서도 아니다. 단지 피드백이 확장되지 않고, 관계가 확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안—수백 명과 진정성 있는 개인적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은 번아웃과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정말로 어렵다. 특히 초창기, 조직이 작았고, 당신이 모두를 알고 있던 시절을 함께 겪어 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때의 리더십은 진짜였고, 잘 작동했고, 아마 꽤 기분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척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주: 사진은 1933년 뉴욕 드레스메이커(의류 노동자) 파업 당시 조합 회의를 위해 모인 대규모 군중이다. 저게 바로 피드백을 스케일링한 모습이다.
발행일: 2025년 11월 19일, Writing 섹션